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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만 퍼센트의 투자 수익률. 최근 은퇴를 선언한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60년간 기록한 결과입니다(같은 기간 S&P 500 지수는 약 3만 9천 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워런 버핏은 살아있는 '가치 투자'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가 투자 시장을 바라보는 철학으로 시계를 컬렉팅했다면 어떤 워치메이커를 선호했을까요? 브레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팬데믹의 하이프를 뒤로한 지금, 워런 버핏의 가치투자와 유사한 시각으로 시계 시장을 바라보는 컬렉터들이 우수한 '내재가치'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브레게에 다시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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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은 젊은 시절부터 기업의 펀더멘털과 장기적 가치를 중요시했습니다. 풍부한 현금흐름과 꾸준한 이익 성장을 달성하는 기업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이 부분이 내재가치의 근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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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가격'은 시장의 다양한 요소에 따라 큰 변동성을 보입니다(새로운 기술과 트렌드에 대한 관심, 지정학적 리스크, 통화정책에 따른 투심 등). 버핏은 이러한 변동 속에서 '가격'이 내재가치에 비해 낮아졌다고 판단될 때 투자금을 집행하고, 반대로 높아졌다고 생각할 때 매각하는 전략을 수십 년간 이행해왔습니다.
버핏의 투자 철학을 시계 컬렉팅에 대입한다면, 어떤 부분을 내재가치의 요소로 볼 수 있을까요?
시계를 금융투자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수반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식투자에서 '투자 수익'을 찾는 것처럼, 시계 컬렉팅에서는 금전적 이익을 넘어 정서적 만족이라는 보상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만족감' 중심의 수집 철학을 공유하는 존 메이어와 에드 시어런© Hodinkee
그렇다면 시계 컬렉팅에서 얻는 만족감(내재가치)은 어떤 기준으로 볼 수 있을까요?
우수한 브랜드 가치와 이를 뒷받침하는 무브먼트 성능, 피니싱, 컴플리케이션을 제작 능력, 타임리스한 디자인, 내구성 등이 타임피스의 내재가치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는 시계 브랜드로는 브레게를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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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이 왜 브레게를 선택할지에 대한 추리를 하기 전에 브랜드의 핵심 철학을 어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브레게의 창업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워치메이킹의 아버지'라 자주 불립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오토매틱 무브먼트부터 투르비용과 기요셰 다이얼 등을 선도한 워치메이커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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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게는 지금도 그 명성에 걸맞은 타임피스를 꾸준히 제작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컬렉터와 옥션 하우스들로부터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방대한 회중시계 '라이브러리'를 보유하고 있는 브레게는 수십 년간 이를 손목시계로 복각한 타임피스를 출시해오고 있고, 올해는 브랜드 창립 250주년 기념으로 선보인 서브스크립션(Souscription)은 워치메이킹 시장의 큰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서브스크립션 시계들이 체텍했던 단일 시계바늘
브레게가 현재까지도 사용중인 무브먼트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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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브레게는 유행에 빠르게 편승하거나 민첩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랜 역사를 갖춘 브랜드답게 축적해온 시그니처 요소들을 자랑스럽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요셰 다이얼을 비롯해, 많은 워치메이커들에게 영감을 준 푸른색 '브레게 핸즈(Breguet Hands)'와 독특한 서체의 '브레게 뉴머럴(Breguet Numerals)' 인덱스를 꾸준히 시계에 적용해오고 있습니다.
파텍 필립도 즐겨쓰는 브레게 뉴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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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케이스백에서 보이는 무브먼트와 케이스 측면 등, 다이얼에 비해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타협 없는 피니싱에 신경을 쓰는 점 또한 컬렉터들이 감탄하는 브레게만의 장인정신을 입증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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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브레게가 보이는 아룸다움에만 치중하는 워치메이커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무브먼트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Horological Density Factor(밸런스 휠의 진동수와 무게, 파워 리저브 등을 복합적으로 평가한 지표, SJX Watches의 연구 참고) 기준으로도 다른 워치메이커들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를 자랑합니다.
초당 20회의 10 Hz(72,000 진동), 클래식 크로노메트리 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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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하이엔드' 워치메이커의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투르비용을 최초로 개발한 것으로 이미 실력을 입증했고, 다니엘 로스(Daniel Roth)와 같은 워치메이커를 배출하고, 폴 쥬른(F.P. Journe)과 같은 독립 브랜드들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브랜드 이미지가 실제 제품의 품질보다 지갑을 열게 하는 시대입니다. 시계 시장은 품질이 뒷받쳐줘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시계 자체가 소비자의 감성보다 절대적인 지표일까요? 인지도나 마케팅 측면에서는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 혹은 롤렉스보다도 깊은 인상은 남기거나 후킹효과에 있어서는 많이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2020년 브레게 광고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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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미지가 지갑을 열게 하는 시대입니다. 시계 시장에서 품질과 퍼포먼스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과연 시계 본연의 가치가 소비자의 감성적 반응보다 더 큰 ‘후킹효과’를 발휘하는 절대적인 지표일까요? 인지도나 마케팅 측면에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마케팅의 귀재인 롤렉스, 프레스티지 마케팅을 멋지게 소화하는 파텍 필립, 그리고 힙한 이미지를 뽐내는 오데마 피게와 비교했을 때 소비자에게 깊은 인상을 각인시키거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힘은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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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해 맡아두고 있을뿐인' 파텍 필립, 힙합 플렉스의 대표 주자인 오데마 피게, 그리고 대통령, 골프 선수, 테니스 스타 등의 손목을 장식한 롤렉스에 비해 컬렉터 커뮤니티 밖에서 브레게는 '그런 메이커도 있어?'라는 질문을 적지 않게 받는 워치메이커입니다.
수많은 ‘테스티모니’를 자랑하는 왕자, 롤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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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요? 브레게 타임피스는 리셀 시장에서 리테일가에 비해 상당한 디스카운트를 받으며 거래되고 있습니다. 감가가 어느정도인지 표를 살펴보면 가격이 브랜드의 브랜드의 높은 명성과는 반대로 가격은 마치 반비례 관계처럼 하락하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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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스탠리, 럭스컨설트가 발표한 2024년 시계 시장 분석 데이터 기준 브레게의 평균 리테일 가격은 약 36,000달러인 데 비해 중고 시세는 17,900달러에 그치고 있습니다.
같은 기준으로 파텍 필립은 평균 리테일가 49,000달러에 비해 약 163,000달러의 중고 시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롤렉스의 프리미엄은 17,200달러의 평균 리테일 가격 대비 20,000달러의 중고 시세를 보이며 약 16%의 리셀 프리미엄을 자랑합니다.
시장 평균보다 낮은 브레게의 리셀 시장 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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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차이는 구매자의 구성과 규모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오른다'로 잘 알려진 롤렉스는 시계를 입문자부터 풍부한 경험을 갖춘 컬렉터까지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끝판왕' 혹은 '황제'라는 타이틀이 부여되는 파텍 필립은 시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정점에 오른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반면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브레게는 상대적으로 니치(niche)한 컬렉터층이 찾는 시계입니다. 진정한 컬렉터라면 브레게를 반드시 좋아하지는 않을 수 있어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중요한 워치메이커로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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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브레게 컬렉터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에게 어떤 시계가 좋은 시계인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갖춘 사람들이고, 동시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나에게는 필요 없는 요소에 대해서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까다로운 구매자입니다.
마치 워런 버핏이 자주 언급하는 능력 범위(Circle of Competence) 개념과 유사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나의 컬렉션에는 꼭 필요 없는 요소에 굳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들이니까요.
흥미로운 점은 이제 시계 시장이 컬렉터가 주도하는 시장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풍부한 유동성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시계에 입문하고 시계 거래량이 폭발하고 가격의 변동성이 심했던 팬데믹 기간과는 달리, 근래에는 내재가치가 우수한 시계를 까다롭게 선택하는 컬렉터들이 시계 시장을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 로스 제작 80년대 브레게 투르비용 Ref. 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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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메이커들의 정교한 더블 투르비용 타임피스와, 극소량으로 생산되었던 까르띠에, 스토리가 명확한 롤렉스 등이 근래 옥션 시장에서 기록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마침 브레게가 90년대에 생산했던 탁상시계와 결합되는 손목시계 Sympathique No. 1를 직접 디자인했던 F.P. Journe에게 550만 CHF(한화 약 91억 2천만 원!) 에 낙찰되기도 했네요.
Sympathique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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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당신이 지불하는 것이고, 가치는 당신이 얻는 것’ 이라고 말했던 워런 버핏이 시계 컬렉터였다면 가장 선호하는 워치메이커는 브레게가 아닐까요?
“가격과 가치는 같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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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메이킹의 아버지'가 만든 브레게, 우리도 다시 한번 시간을 들여 되짚어볼 시점이 온 듯합니다. 시장의 관심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만큼,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 ‘공정 가치 이하로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아! 참고로 워런 버핏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저평가된 롤렉스라고 생각하는 데이데이트를 애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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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wang
시계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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