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쥔 여성들
이제는 여성이 시계를 선택할 때
Special Theme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그룹 리치몬트는 최근 2025년 1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2024년에 비해 시계의 매출이 다소 고전하는 가운데에 그룹 전체의 매출을 끌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반 클리프 앤 아펠, 까르띠에, 부첼라티(Buccellati), 베르니에(Vhernier)의 주얼리 부분이었습니다. 주얼리의 주 소비층은 다름 아닌 여성인데요. 이들이 주얼리 분야는 물론 접점이 있는 주얼리 시계와 시계 시장에서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메종들은 이 현실을 일찍이 인지하고, 여성 타겟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를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실용성과 장식성 사이에 놓인 여성용 시계는 어떻게 소비를 유도하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여성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까요?

꾸준하게 나오는
새로운 여성 컬렉션

‘헤리티지’ 범위에서 오는 ‘어드벤티지’

© Cartier

© Cartier

주얼리와 워치메이킹을 함께 병행하는 브랜드는 귀금속 소재와 비정형적인 모양 및 디자인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를 무기 삼아 독창적인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시계 전문 브랜드들에게 자산이자 자부심인 ‘헤리티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자유 또한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중 주얼리가 모태인 까르띠에는 시계와 주얼리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또 연결하곤 합니다. 2025년의 새로운 여성 시계 컬렉션인 트레사쥬(Tressage)는 그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본래 주얼리 라인인 트레사쥬가 출시된 지 단 2년 만에 워치 라인이 파생된 것도 새로운 시도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좌: 측면에서 보는 트레사쥬 워치 / 우: 트레사쥬 브레이슬릿과 링<br/>© Cartier

좌: 측면에서 보는 트레사쥬 워치 / 우: 트레사쥬 브레이슬릿과 링
© Cartier

시계 좌우로 감싼 볼륨감 있는 트위스트 오브제가 특징인 시계입니다. 꼬아 놓은 볼륨감은 주얼리에서도 이어지며 하나의 세계관을 이룹니다. 측면에서는 다이얼이 오브제에 가려 주얼리 브레이슬릿의 형태만이 남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리플렉션 드 까르띠에<br/>© Cartier

리플렉션 드 까르띠에
© Cartier

지난해에는 다이얼을 반사 시켜 시간을 읽는 뱅글 스타일 시계인 리플렉션 드 까르띠에(Reflection De Cartier) 컬렉션이 있었습니다. 유사한 구조를 가진 팬더 주얼리 워치는 주얼리와 형식과 형태에서 유사점을 가지며 나란히 평행선을 그리죠.

팬더 주얼리 워치<br/>© Cartier

팬더 주얼리 워치
© Cartier

시상식과 갈라에서 자주 등장하는 하이 주얼리로 명성을 떨쳐온 피아제 역시, 시계와 주얼리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깊고도 풍부한 주얼리 히스토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좌: 60-70년대 쥬얼리 시계 / 우: 피아제 식스티<br/>
© Piaget

좌: 60-70년대 쥬얼리 시계 / 우: 피아제 식스티
© Piaget

피아제가 선보인 새로운 여성 컬렉션 식스티(Sixtie)는 여성 컬렉션의 커진 무게감을 드러냅니다. 포화된 남성 컬렉션을 대신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기대감이 엿보입니다. 1960년대 주얼리의 트렌드 하나는 기하학적 요소입니다. 예술계는 당시 모드(Mod) 운동의 영향을 받아 1950년대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스타일에서 새로운 형태의 실험적인 스타일을 추구했습니다. 더불어 달 착륙 경쟁이 한창인 우주 시대(Space Age) 미학의 영향을 받아 쉐이프 자체가 디자인의 본질적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식스티는 이 시기를 반영하는 디자인으로 역 사다리꼴의 위, 아래가 비대칭인 기하학적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시계를 펜던트로도 응용했던 식스티는 독특한 형태와 디테일을 되살려 피아제 여성 컬렉션의 새로운 얼굴로 떠올랐습니다.

매일 착용하는 주얼리 X 시계

하이 주얼리와 하이 주얼리 워치는 시간이 흐르면 예술품으로써 칭송 받지만 그 화려함이 때로는 부담스럽습니다. 데일리나 오피스웨어로는 활용에 제약이 있고, 근본적으로는 가격대 자체가 매우 높아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이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 바로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에 보석 세팅을 최소화한, 일종의 ‘주얼리 워치’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는 골드나 플래티넘 같은 귀금속에 비해 가격 부담이 낮고 실용성도 높습니다. 여기에 작은 스톤을 베젤이나 인덱스 정도에만 세팅하면, 절제된 화려함을 연출할 수 있어 실제 수요도 꾸준합니다.

롤렉스 레이디 데이트저스트 ‘별 다이아’ 다이얼<br/>© Rolex

롤렉스 레이디 데이트저스트 ‘별 다이아’ 다이얼
© Rolex

Lady-Datejust 28 279174

Lady-Datejust 28 279174

28mm, 실버/다이아몬드, 쥬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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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Datejust 28 279174

Lady-Datejust 28 279174

28mm, 핑크/다이아몬드, 쥬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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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형태보다 개성 있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이들을 위한 시계 디비전에서, 불가리는 브랜드 인지도를 꾸준히 높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세르펜티(Serpenti) 라인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스틸 케이스에 프티(Petit) 다이아몬드를 뱀 머리 모양의 케이스에 세팅한 버전은 최근 들어 눈에 띄는 인기를 얻고 있죠. 국내에서도 세르펜티 컬렉션의 세두토리(Seduttori)와 투보가스(Tubogas) 라인은 귀금속이 일부 혼합된 ‘투톤’ 엔트리 모델들은 거의 매주 품절될 정도입니다.

좌: 투보가스 브레이슬릿 / 우: 세르펜티 투보가스 시계<br/>
리테일가 차이 40만 원<br/>
© Bulgari

좌: 투보가스 브레이슬릿 / 우: 세르펜티 투보가스 시계
리테일가 차이 40만 원
© Bulgari

주얼리로는 같은 예산 안에서 구현하기 힘든 존재감. 그 역할을 시계가 대신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베르소 원 듀에토<br/>© Jaeger-LeCoultre

리베르소 원 듀에토
© Jaeger-LeCoultre

예거 르쿨트르의 랑데부(Rendez-Vous)는 이 방식에서 교과서적입니다. 스틸 케이스의 베젤에 프티 다이아몬드를 세팅하거나 아워 인덱스에만 포인트를 더하는데 사용하기도 하죠. 브랜드를 대표하는 컬렉션인 리베르소에서도 스틸 케이스와 두 줄의 다이아몬드 세팅 조합을 크기 별로 고를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세팅이 되었지만 일반 스틸 모델과 비교해도 가격 부담이 크지 않아 많은 선택지 안에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합니다.

여성용 컴플리케이션이
암시하는 사실

트웬티포 쿼츠<br/>
© Patek Philippe

트웬티포 쿼츠
© Patek Philippe

1999년에 등장한 트웬티포(Twenty~4)는 파텍 필립 최초의 여성용 컬렉션이었습니다. 아르데코(Art Deco)의 영향을 받아 만든 직사각형 케이스와 일체감을 보여주는 브레이슬렛 디자인이 특징이죠. 파텍 필립의 브랜드 타이틀을 달았지만,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한 화법은 기존 여성시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계식 무브먼트의 사용과 관리를 번거롭게 여기는 여성 유저에 맞춘 접근이었습니다.

원형 케이스를 채택한 트웬티포<br/>© Patek Philippe

원형 케이스를 채택한 트웬티포
© Patek Philippe

2018년에 트웬티포는 새로운 시계를 발표합니다. 사각형 디자인과 달리 라운드 케이스를 택했고 기계식 무브먼트 사용했죠. 사실상 새로운 컬렉션에 가깝지만 트웬티포의 이름으로 나온 새 시계는 나타나는 바가 적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기계식 무브먼트를 투입해 남성용 컬렉션과 동등한 눈높이를 가지고 가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아래는 파텍 필립 CEO 티에리 스턴이 여성 시계에 대해 언급한 인터뷰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여성들도 자신만의 시계를 가져야 한다고 결정했어요… 단순한 기믹이 아니고, 남성용 시계를 흉내 낸 것도 아니며,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닌 그런 시계 말이에요.”

최근에는 워치스 앤 원더스 2025에서 트웬티포퍼퍼츄얼 캘린더까지 출시되었습니다. 여성 고객도 시계를 볼 때 패션 액세서리에서 오트 오를로제르(Haute Horlogerie)로서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증입니다.

시간을 쥘 여성들

여성 시계는 시계시장에서 이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과 남성용 못지 않은 기계식 무브먼트를 사용한 여성용 시계들은 이제 단순한 액세서리 아닙니다. 남성 시계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이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여성들이 더 이상 단순한 장식적 요소를 넘어선 기능과 정교함을 요구하는 소비층임을 보여줍니다.

세르펜티 세두토리 투르비용<br/>© Monochrome

세르펜티 세두토리 투르비용
© Monochrome

샤넬과 마네킹이 움직이는 J12 오토마톤 칼리버 6<br/>© Chanel

샤넬과 마네킹이 움직이는 J12 오토마톤 칼리버 6
© Chanel

브랜드는 여성 고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들만의 ‘템플릿’ 또는 ‘캔버스’를 필요로 합니다. 탱크, 서브마리너, 문워치, 노틸러스, 로열 오크처럼, 5미터 거리에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시그니처 디자인이야말로 성공적인 제품의 출발점입니다.

오늘날 많은 메종들은 이 ‘인지도 쌓기’는 이미 어느 정도 완료되었다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덕분에 하이엔드 패션과 주얼리로 더 익숙한 메종에서도, 한때 불필요하게 여겨졌던 컴플리케이션들을 꾸준히 선보이는 추세입니다.

이는 단순히 시장의 수요에 반응하기보다는, 시계 제작 능력을 증명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시장을 스스로 움직이려는 야망에서 비롯된 행보입니다. 언젠가는 이 야망이 더욱 또렷한 빛을 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Cartier, Blancpain, Van Cleef & Arpels,<br/>Jaeger-LeCoultre, Piaget

© Cartier, Blancpain, Van Cleef & Arpels,
Jaeger-LeCoultre, Piaget

앞으로도 여성용 시계는 여러 관점에서 더욱 주목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주얼리와 시계 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둘이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결과물의 등장도 기대됩니다.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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