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스위스 시계의 글로벌 수출이 2.8% 감소한 가운데 인도 시장은 무려 25%의 성장을 기록하며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흐름을 보여줬습니다.

표1. 주요 지역별 스위스 시계 수출 성장률

표2. 주요 지역별 스위스 시계 수출 점유율
(2024년 기준)

비고: 유럽 3대 시장: 영국, 프랑스, 독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위스 시계 시장 규모에서 30위권 밖이었던 인도는 단숨에 21위로 올라섰으며, 2028년에는 10위권 진입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과연 인도가 글로벌 시계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 Forbes India

인도의 부상이 장기적으로 글로벌(그리고 한국) 시계 시장의 시계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까요?

억만장자 '맛집', 인도

(좌)무케시 암바니(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우)가우탐 아다니(아다니 그룹)
합산 순자산 규모는 202조 원이다
© India Business Journal

인도는 현재 포브스의 억만장자 리스트에 총 205명(중국 450명, 한국 40명)과 120개의 유니콘 기업을 자랑하는 국가입니다.

표3. 2015년부터 2025년 사이 증시 수익률 비교

비고: 2025년 8월 기준

더불어 인도의 주식 시장 규모(시가총액)는 지난 10년 약 220% 성장했으며(같은 기간 중국은 47% 성장), 더 많은 부자를 탄생시켰습니다.

© Forbes India

그럼에도 인도의 전체 인구 중 백만장자 비율은 2024년 기준 0.06%로, 중국 2010년대와 유사합니다.

표4. 백만장자 인구수 비교(2024년 기준)

출처: UBS Global Wealth Report

표5. 전체 인구 중 백만장자 인구 비중
(2024년 기준)

만약 10년 전 중국처럼 백만장자의 인구 비율이 0.1%에 도달한다면, 이는 약 140만 명으로, 한국의 백만장자 인구(130만 명)를 초과하게 됩니다. 부유층 인구가 이러한 규모를 달성하는 순간, 스위스 워치메이커들에게 인도는 더 이상 '신흥 시장'이 아닌 주요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시계를 좋아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

인도 배우 Malaika Arora를 앰배서더로 내세운 인도 워치메이커
© Jaipur Watch Company

작년 인도는 세계 최대 금 장신구 시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코노미스트 주간지에 따르면, 2024년 인도에서 소비된 금 장신구는 총 560톤으로, 이전까지 최대 시장이었던 중국(510톤)을 앞질렀습니다.

표6. 지역별 금 수요 추이(2024년 기준)

비고: 붉은색 부분은 금 장신구를,
살구색 부분은 금괴와 동전 수요를 나타냅니다.

대표적으로 인도에서 금과 보석은
1. 세대 간 부의 전수 수단,
2. 여성을 위한 경제적 "안전망"
3. 사회적 지위의 상징을 의미합니다.

© Shades Photography

참고로 인도의 중상류층 결혼식에는 200g에서 1kg 이상의 금이 사용되며, 현재 금 시세 기준으로 약 3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어치에 달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연간 금 수요의 약 절반이 예물 및 결혼과 연관된 것으로 파악되며, 이는 한국의 예물 문화와 고급 시계에 대한 인식과도 유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Vogue

또한 아시아 부자 가문 1위인 암바니 가문(릴라이언스 그룹 소유)의 아난트 암바니(Anant Ambani)와 같은 공인들이 공석에서 초호화·고가 시계를 자유롭게 착용하는 문화를 고려하면(한국과는 매우 다른), 시계 혹은 금 시계의 수요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난트 암바니가 결혼 축제 기간동안 착용한 시계 컬렉션 일부
© Epic Stories, Patek Philippe, Richard Mille

참고로 아난트 암바니는 가장 친한 친구 25명에게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26584OR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당시 리테일가만 1억 5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26584OR
© Audemars Piguet

인도의 시계 시장
20년 전 중국과 유사

그렇다면 현재 인도의 시계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요?

스위스 시계 수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인도의 스위스 시계 수입 규모는 2억 7,400만 프랑(2024년 환율 기준 4,240억 원)입니다. 이는 2005년 중국으로 수출된 3억 5,610만 프랑(당시 환율 기준 2,930억 원)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표7. 중국 대상 스위스 시계 수출 규모의 성장

인구당 수입액은 어떻게 나올까요?
인도 1인당 스위스 시계 수입액은 0.19프랑으로, 중국(1.5프랑)에 비해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표8. 주요 국가별 인당 스위스 시계 수출금액 비교

급변하는 인도의
럭셔리 시장 생태계

인도의 스위스 시계 유통 인프라는 중국이나 기타 아시아 국가에 비해 매우 협소합니다. 한 예로, 인도와 인구가 유사한 중국 내 롤렉스 부티크 수는 55개인 반면, 인도에는 21개 뿐입니다.

표9. 아시아 주요 국가별 롤렉스 공식 부티크 개수

그만큼 부티크 하나당 담당해야 하는 백만장자 인구수가 많다는 뜻으로, 즉 충분히 커버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표10. 롤렉스 부티크 개수 vs. 백만장자 인구 비교
(부티크 당 백만장자 인구)

스위스 워치메이커들과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들은 노선을 바꾸는 정황이 보입니다. 현재 인도의 럭셔리 시장 인프라 부족을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출하고 영업망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인도 셀럽들이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한 대표적인 브랜드들입니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더 많은 브랜드, 특히 하이엔드로 인식되는 브랜드들이 인도인 앰배서더를 기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다음은 인도?

발리우드를 대표하는 인도 국민 배우 샤룩 칸
© Shashank Parade, Audemars Piguet

손목시계의 양산화가 시작된 1900년대 초부터 스위스 워치메이커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2차 세계대전 전후에는 미국, 1960~1990년대에는 홍콩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범동아시아, 그리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중국.

표11. 주요 국가별 스위스 시계 수출 점유율 변화

하지만 이제 스위스 워치메이커들은 이러한 성장 동력을 모두 잃었으며, 무역 전쟁과 대미 수출에 대한 39% 관세라는 큰 리스크까지 떠안고 있습니다. (출처: 헤럴드경제)

인도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워치메이커들에게는 이제 단순한 경쟁 우위를 넘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전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파텍 필립 스카이 문 투르비옹 600R-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