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워치 1부 '빈티지'의 정의
가치 있는 빈티지의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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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시계 경매 최고가 20위 중 14개가 1970년대 이전에 제작된 타임피스입니다.

파텍 필립 크로노그래프 퍼페추얼 Ref. 1518 (1943년 생산)<br/>© Phillips, Hodinkee

파텍 필립 크로노그래프 퍼페추얼 Ref. 1518 (1943년 생산)
© Phillips, Hodinkee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천문학적인 가격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요소들이 이 골동품들의 가치를 정당화하는 걸까요? 두 편으로 나누어 진행할 ‘빈티지 시계’ 시리즈의 첫 번째 편에서는 그 시작점으로서 ‘빈티지 시계란 무엇인가’, 그 정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연식으로만 구분할 수 있을까?

1920년대 초창기 까르띠에 탱크 루이 / © Hodinkee

1920년대 초창기 까르띠에 탱크 루이 / © Hodinkee

'빈티지'를 정의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바로 연식에 따라 구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이른바 ‘기계식 시계의 르네상스’ 이전에 제작된 시계를 ‘빈티지’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기를 경계로 시계 산업은 차츰 쿼츠 쇼크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제조 기법과 마케팅 전략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88년 출시된 다니엘 로스의 브레게 트루비옹 명작 Ref. 3350<br/>© A Collected Man

1988년 출시된 다니엘 로스의 브레게 트루비옹 명작 Ref. 3350
© A Collected Man

반면,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이들은 쿼츠 파동이 본격화되기 전인 1970년대 이전까지만을 진정한 빈티지로 봅니다. 그들에게 빈티지는, 순수한 기계식 시계 제작 전통이 유지되던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네오 빈티지(Neo Vintage)'라는 개념도 등장했습니다. 이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시계들을 아우르는 더 넓은 범주로, 빈티지의 매력과 모던 시계의 내구성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게다가 신품에 비해 가격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작용해, 새로운 컬렉터들 사이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제니스의 엘프리메로 무브먼트를 사용한 최초의 오토매틱 데이토나<br/>Ref. 16520(1988-2000). 대표적인 네오빈티지 롤렉스<br/>© 41 Watch

제니스의 엘프리메로 무브먼트를 사용한 최초의 오토매틱 데이토나
Ref. 16520(1988-2000). 대표적인 네오빈티지 롤렉스
© 41 Watch

자동차로 이해하는 빈티지의 개념

바쉐론 콘스탄틴 크로노그래프 Ref. 4072 / © Sotheby's

바쉐론 콘스탄틴 크로노그래프 Ref. 4072 / © Sotheby's

연식에 따른 '빈티지'의 정의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하고자 우리에게 친숙한 현대 그랜저의 세대별 변화를 살펴보았습니다.

1세대 그랜저(1986-1992) 명실상부한 '오리지널'입니다. 일명 '각그랜저'로 불리는 이 차들은 국내 최초의 고급 세단으로 한국 빈티지카 문화의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국내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확고한 빈티지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세대 그랜저, 1세대 데이트저스트<br/>© Hyundai, The Jewellery Editor

1세대 그랜저, 1세대 데이트저스트
© Hyundai, The Jewellery Editor

2세대 그랜저(1992-1998)는 드라마에서도 그리고 실제로도 대통령이나 기업 총수들의 차로 애용 되었습니다. 수입차가 흔치 않던 1990년대 당시, 고급 호텔 로비 앞에는 어김없이 2세대 그랜저가 있었습니다. 국내 자동차 씬에서도 '올드카'라는 호칭이 붙을 만큼 빈티지카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2세대 그랜저, 데이저스트의 대량 상업화 시대를 알린 Ref. 1601<br/>© Hyundai, Oliver and Clarke

2세대 그랜저, 데이저스트의 대량 상업화 시대를 알린 Ref. 1601
© Hyundai, Oliver and Clarke

3세대 그랜저(1998~2005)부터는 의견이 갈릴 수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많은 VIP들이 이 차를 이용했고, 2세대까지 이어온 ‘국내 최고 럭셔리카’의 후광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기함’ 에쿠스와 쌍용 체어맨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최고’의 자리는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3세대 그랜저, 데이트저스트 Ref. 16234<br/>© Hyundai, Watch Chest

3세대 그랜저, 데이트저스트 Ref. 16234
© Hyundai, Watch Chest

4세대 그랜저(2005-2011)부터는 빈티지나 올드카라고 부르는 경우는 비교적 드문 것 같습니다. 에쿠스와 체어맨의 판매량이 늘어나며 시장의 중심이 이동했고, 기존의 ‘기사가 모는 사장님 차’ 이미지에서 오너 드라이버’의 세단으로 포지션이 확고해졌습니다.

4세대 그랜저, 슈퍼(맥시) 케이스 데이트저스트 ref. 116234<br/>© Hyundai, Autoview, Watch Club

4세대 그랜저, 슈퍼(맥시) 케이스 데이트저스트 ref. 116234
© Hyundai, Autoview, Watch Club

단순한 '오래됨'과 '빈티지'의 차이

좌측: 씨마스터 쿼츠 / 우측: 스피드마스터 2998-6<br/>© The Wrist Watcher, Wind Vintage

좌측: 씨마스터 쿼츠 / 우측: 스피드마스터 2998-6
© The Wrist Watcher, Wind Vintage

이미지 좌측 쿼츠 씨마스터는 디자인 철학이나 생산 품질 면에서 크게 기억에 남지 못한 채 1970년대에 생산되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레트로 퓨처리즘 디자인의 인기로 실용적인 빈티지 아이템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반면, 1960년대에 생산된 우측의 스피드마스터 2998-6은 오리지널 스피드마스터의 철학을 잘 계승한 타임피스로 인정받습니다. 이 디자인은 현재까지 복각되고 있으며, 브랜드는 시계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소비자는 소유의 당위성을 정신적으로 부여합니다.

2025년 기준 벌써 31주년을 맞이하는 랑에 1 Ref. 101.001<br/>© Hodinkee

2025년 기준 벌써 31주년을 맞이하는 랑에 1 Ref. 101.001
© Hodinkee

랑에의 부활을 알린 1994년 발표회 / © Lange

랑에의 부활을 알린 1994년 발표회 / © Lange

위의 그랜저 예시에서 알 수 있듯, 연식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시절, 그 제품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세대와 2세대 그랜저가 빈티지카로 인정받는 이유는 단순한 연식이 아니라, 한 시대를 상징하고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개념을 탄생시킨<br/>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Ref. 5402<br/>© Amsterdam Vintage Watch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개념을 탄생시킨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Ref. 5402
© Amsterdam Vintage Watch

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오래된 시계와 진정한 '빈티지' 시계를 구분하는 핵심은 바로 시계인들이 느끼는 '가치'에 있습니다. 그 시대의 기술적 혁신을 담았거나, 역사적 사건과 맞닿아 있거나, 디자인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보여준 시계들만이 진정한 빈티지로 불립니다.

© Tim Graham Photo Library/Getty Images.

© Tim Graham Photo Library/Getty Images.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두 아들은 어머니의 수많은 유품 중에서도 까르띠에 탱크 프랑세즈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 의미와 아름다움이 바래지 않는 것—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빈티지 시계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빈티지 시계가 지닌 그 특별한 ‘가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일까요?
다음 편에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David Hwang

시계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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