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베스트 워치 Top 5
올 한 해 시계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던 시계
Special Theme

불가리 세르펜티의 기사와 함께 푸른 뱀의 해의 시작을 알린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25년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바이버 매거진을 애독하는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한 해, 또 어떤 워치 라이프를 즐기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2025년을 보내며, 올 한 해 시계 애호가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던 시계 5점을 선정했습니다. 2025년이라는 시대의 지문을 가장 뚜렷하게 남긴 타임피스들입니다.

브레게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br/>© Worn & Wound LLC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
© Worn & Wound LLC

브레게 설립 25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클래식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2025는 단순히 아름다운 시계를 보여주기 위해 제작된 게 아닙니다. 기술, 비즈니스,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다방면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서브스크립션은 이름 그대로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고안한 선주문 방식의 시계였습니다. 구매자가 시계 가격의 25%를 계약금으로 내고 주문하는 방식은 당시로는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습니다. 회사를 운영할 안정적인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브스크립션은 분침만 장착해 보다 빨리 시계를 만들 수 있어서 생산성이 높았습니다. 물론 당시의 시간 개념은 지금처럼 1분, 1초 단위로 빡빡하지 않았기 때문에, 싱글 핸드만으로도 사용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서브스크립션 2025와 실제 브레게 포켓워치<br/>© SWISSWATCHES MEDIA GMBH

서브스크립션 2025와 실제 브레게 포켓워치
© SWISSWATCHES MEDIA GMBH

브레게의 구독형 시계를 손목시계로 재해석한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는 싱글 핸드와 역사적 배경을 시계에 담았습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한 핸드와인딩 칼리버 VS00를 탑재하고 브레게 골드라는 새로운 골드 합금을 케이스에 사용했습니다. 그랑 푀 에나멜("Grand feu" enamel)로 더욱 특별함을 더했습니다.

© Monochrome

© Monochrome

아마 싱글 핸드 시계를 처음 접해보는 분이라면 꽤 생소할지도 모릅니다. 분 단위의 시간을 대략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어서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 표시라는 시계의 본질, 시간의 흐름을 여유롭게 즐기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이해한다면 이 시계의 진정한 가치가 다가올 터입니다.

롤렉스
랜드-드웰러

랜드-드웰러 에버로즈 골드, 스틸, 플래티넘<br/>© Rolex

랜드-드웰러 에버로즈 골드, 스틸, 플래티넘
© Rolex

기존 ‘드웰러’ 시리즈인 씨-드웰러와 스카이-드웰러에 이은 세 번째 모델로, 육지에서의 확고한 기반과 미래 지향적 혁신을 상징하는 랜드-드웰러입니다. 디자인은 1960년대 후반 일체형 브레이슬릿 시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플랫 주빌리 브레이슬릿과 허니콤(Honeycomb) 패턴의 다이얼이 그 외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죠.

허니콤 다이얼과 플랫 쥬빌리 브레이슬릿 / © Revolution

허니콤 다이얼과 플랫 쥬빌리 브레이슬릿 / © Revolution

랜드-드웰러를 베스트 워치 5에 꼽은 이유는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7135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천하의 롤렉스라고 할지라도 독특한 레트로 디자인만으로는 베스트 워치의 하나로 꼽기에 무리가 따르니까요.

Caliber 7135 / © Rolex

Caliber 7135 / © Rolex

칼리버 7135의 의의는 한마디로 기계식 시계의 심장을 세대교체할 가능성에 있습니다. 현재 스위스를 포함해서 독일, 일본 등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나라에서 심장에 해당하는 ‘이스케이프먼트’는 ‘스위스 레버(Swiss Lever)’라는 업계 표준 같은 방식을 씁니다. 어디에서도 스위스 레버를 써야 한다는 규칙이 없지만, 충격에 강하고 빈번한 포지션 변화에도 잘 대응해 손목시계에 적합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단점은, 자동차에 빗대자면 연비가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 Rolex

칼리버 7135의 다이나펄스(Dynapulse) 이스케이프먼트는 동력 효율(연비)이 월등하고, 윤활 필요성도 줄어듭니다. 칼리버 7135처럼 5Hz 같은 고진동이라 정확성에서도 유리합니다. 다이나펄스는 브레게가 생전에 고안한 내추럴 이스케이프먼트의 구조에서 발전했습니다. 당시에는 조정, 쉽게 말해 튜닝이 까다로워서 아주 소량만 제작했으나, 여러 브랜드의 시도를 거쳐 다이나펄스로 진화하며 새로운 심장의 시대를 기대하게끔 하고 있습니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 / © Rolex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 / © Rolex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RD#5

Royal Oak RD#5 <br/>© Hodinkee

Royal Oak RD#5
© Hodinkee

로열 오크 엑스트라-씬 셀프와인딩 플라잉 투르비옹 크로노그래프 (RD#5)는 2025년 오데마 피게 150주년을 기념해 공개한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입니다. 크로노그래프의 작동 방식에 ‘혁명’이라는 표현을 붙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구조적 변화를 제시한 시계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롤렉스 랜드-드웰러가 기계식 시계의 ‘심장(이스케이프먼트)’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라면, RD#5는 크로노그래프의 ‘구조 자체’를 크게 바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Caliber 8100 / © Audemars Piguet

Caliber 8100 / © Audemars Piguet

크로노그래프에도 일종의 표준 문법이 있습니다. 심장부만큼 단일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작동 핵심인 ‘클러치’는 대체로 몇 가지 대표 구조 중 하나를 택합니다. 클러치는 쉽게 말해, 크로노그래프를 작동시키기 위해 시간 표시 트레인에 크로노그래프 트레인을 ‘붙였다 떼는’ 연결 장치입니다. 케이스 측면의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 행위가 클러치를 붙이는 동작이고, 리셋은 반대로 연결을 해제하는 동작입니다. RD#5는 바로 이 클러치 구조에서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RD#5의 조작법과 상세한 무브먼트 작동 원리
© Monochrome

레버와 스프링 중심의 전통 구조에 랙 앤 피니언(Rack & Pinion) 메커니즘을 혼합해 작동 감각과 제어성의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격상시켰다는 점도 포함됩니다. 기술적으로 복잡하지만, 결과적으로 조작이 훨씬 부드러워졌고, 특히 푸셔를 누를 때 훨씬 적은 힘으로도 정확한 작동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세대의 ‘터치’에 가까운 감각으로 크로노그래프를 더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  Audemars Piguet

© Audemars Piguet

크라운에는 RD#4이 선보였던 기술이 이어집니다. 별도의 푸셔가 통합되어 있어 일반 시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술력을 보여주는데요: 기본 상태에서는 와인딩 모드로 작동하며, 크라운에 통합된 푸셔를 눌러 모드를 전환하면 크라운 옆에 빨간색 링이 나타나 시간 세팅 모드로 변경되었음을 직관적으로 알려줍니다.

© Monochrome

© Monochrome

RD#5는 이 모든 컴플리케이션을 담고 있으면서도 기존 39mm ‘점보’ 모델과 동일한 사이즈를 유지하는 기술력을 보여줍니다. 티타늄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을 사용해 초경량을 구현했으며, 다이얼에는 ‘점보’ 모델의 시그니처인 쁘띠 타피세리 기요셰 스탬핑을 적용했습니다. 베젤은 벌크 금속 유리 합금(Bulk metallic glass)으로 제작되어, 일반적인 로열 오크의 버티컬 브러싱 마감과는 다른 독특한 질감을 선사합니다.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투르비용

Octo Finissimo Ultra Tourbillon / © Bulgari

Octo Finissimo Ultra Tourbillon / © Bulgari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스포츠계의 격언은 시계 업계에서도 유효했습니다.
케이스 두께 1.85mm로 핸드와인딩 투르비용 중에서 가장 얇은 시계입니다.

옥토 피니시모 울트라 투르비용의 놀라운 두께<br/>© Time + Tide

옥토 피니시모 울트라 투르비용의 놀라운 두께
© Time + Tide

가장 얇은 두께를 추구하는 울트라 씬 장르에서 불가리의 약진은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케이스 두께 1.70mm로 타임온리 핸드와인딩 부문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피아제와 리차드 밀을 꺾고 다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바 있고, 다른 기능에서도 여러 챔피언을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4시 방향에 배치된 투르비용 / © Watches by SJX

4시 방향에 배치된 투르비용 / © Watches by SJX

불가리는 시계의 얇은 두께를 위해 부품을 수평으로 펼쳐놓는 방식에 능통합니다. 2000년대 이후 울트라 씬에서는 일반화된 접근이지만, 조금 더 극단적입니다. 크라운 마저 수평으로 장착해 케이스 좌우 측면에 하나씩(태엽감기와 시간 조정을 분리) 달려 있습니다.

좌·우측 두 개의 크라운  / © Time + Tide

좌·우측 두 개의 크라운 / © Time + Tide

부품의 전통적인 역할도 허물었습니다. 케이스백이 무브먼트의 플레이트 역할을 겸하고, 전통적으로 다이얼이라 부를 만한 부분에 시·분·초침과 태엽통, 톱니바퀴들이 온통 펼쳐져 있죠. 부품 역할의 경계가 없기 때문에 텅스텐 카바이드 같은 소재를 활용해 강도를 향상시켰고, 모든 부품은 계체를 앞두고 땀 한방울까지 짜내고 짜내는 복서처럼 두께를 줄이고 또 줄였습니다. 그 결과 신용카드 2장의 두께를 조금 넘는 기계식 시계가 손목 위에서 작동하는 경이로운 모습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 A Blog to Watch

© A Blog to Watch

까르띠에
탱크 아 기쉐

‘25년 까르띠에 프리베(Privé) 컬렉션의 아 기쉐 4종<br/>© Cartier

‘25년 까르띠에 프리베(Privé) 컬렉션의 아 기쉐 4종
© Cartier

탱크 아 귀세는 1928년 탄생한 탱크 워치 패밀리의 하나로, 1930년대 일부 VIP를 대상으로 제한 생산됐으며, 재즈 뮤지션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이 착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번에 프리베 컬렉션으로 부활한 탱크 아 기쉐는 두 개의 '기쉐(Guichet/창)'를 통해 점핑 아워와 드래깅 미닛을 디지털 디스크로 표시하는 파격적 디자인이 매력입니다.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 Ref. 6196P나 쇼파드 L.U.C 퀄리테 플러리에 20주년 에디션도 강력한 [심플 워치] 베스트 후보였지만, 더욱 미니멀해서 강렬한 탱크 아 기쉐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탱크 아 기쉐 로즈 골드 Ref. WGTA0235<br/>© Oracle Time 2025 Opulent Media Ltd.

탱크 아 기쉐 로즈 골드 Ref. WGTA0235
© Oracle Time 2025 Opulent Media Ltd.

곡선 케이스의 탱크 상트레, 케이스를 뒤집어 글라스를 보호하는 탱크 바스큘란트처럼 개성적인 모델이 즐비한 탱크 패밀리 안에서도, 탱크 아 기쉐는 특히 눈에 띕니다.

© Time-Telling Magazine

© Time-Telling Magazine

작은 창을 제외하고 전면을 메탈 플레이트로 덮은 구성은 전쟁 병기 탱크의 인상을 한층 직접적으로 환기하며, 동시에 글라스 노출 면적을 최소화해 실사용 내구성을 염두에 둔 기능적 접근으로도 읽힙니다. 그 결과 탱크 아 기쉐는 단순함과 개성을 동시에 확보했고, 2025년을 대표하는 심플 워치로 손꼽기에 충분한 존재감을 증명했습니다.

2025년은 혁신과 전통이 공존하는 특별한 한 해였습니다. 기계식 시계의 무한한 가능성이 다시금 느껴집니다. 브레게의 철학적 메시지부터 불가리의 기록 경신, 오데마 피게의 크로노그래프 기술 혁명까지 – 시계학과 시대의 지문을 새길 증언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26년에도 이런 혁신이 계속되길 기대합니다.

아듀 2025. 바이버 매거진 독자 여러분과 새해에도 손목 위 특별한 순간을 함께 새겨나가길 바랍니다.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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