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병오년은 불과 불이 만난 해라고 합니다. 추진력, 열정, 그리고 폭발적인 확장의 에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거나,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기에 아주 좋은 때라고 하죠. 그럼 강력한 불의 기운을 가진 붉은 말을 담아낸 말 에디션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성들의 워너비 가방인 버킨백으로 잘 알려진 에르메스는 19세기 마구와 안장을 제작하는 아틀리에가 기원입니다. 에르메스의 로고 역시 사륜 마차 칼레쉬(Calèche)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된 것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이 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서 인지 에르메스에서는 말을 모티프로 한 시계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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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쏘 로카바 드 리르 (Arceau Rocabar de Rire)는 작년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공개된 모델로, 병오년을 직접 겨냥한 말 에디션은 아니지만 말 모티프를 가장 완성도 높게 구현한 시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등자 모양의 비대칭 케이스를 지닌 아쏘(Arceau)에 장난기 넘치는 말의 모습을 정교하게 다이얼 위에 옮겨 담았습니다. 인그레이빙과 미니어처 페인팅 기법을 활용해 생동감 있는 말의 모습을 구현했고, 그 배경에는 에르메스의 아이코닉한 담요인 로카바 블랭킷을 말총 마케트리로 재현했습니다. (마케트리는 쉽게 말해 마루의 나무 조각맞춤과 같은 인레이 기법인데, 말총 마케트리는 나무 대신 엄선한 말총 한 올 한 올을 다이얼 위에 섬세하게 접착해 패턴을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질감과 입체감이 살아 있는 다이얼이 완성됩니다.
이 시계에 탑재된 온 디맨드 임펄스(On-demand
Impulse) 기능은 케이스 9시 방향의 버튼으로 작동하며, 버튼을 누르면 말이 혀를 쏙 내밀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이 장난스럽고 유쾌한 연출이야말로 '아쏘 로카바 드 리르'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 뱀의 해에 이어 바쉐론 콘스탄틴, 예거 르쿨트르, IWC 등에서도 말의 해를 기념하는 시계를 선보였습니다. 시계 회사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거의 매년 그 해의 십이지(十二支)를 테마로 한 주인공 모델을 새로 공개하고 있어, 일종의 장기 연작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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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의 증거로 작년과 동일하게 플래티넘과 핑크 골드 케이스, 두 개의 버전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바쉐론 콘스탄틴 250주년을 기념하는 에디션 '포 시즌 (Les Quatre Saisons)'에서 시작된 표현 방식으로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자연의 디테일을 보여줍니다.
다이얼 바깥쪽 네 개의 창을 통해 디지털 방식으로 시, 분, 날짜, 요일을 나타내는 기능은 매년 십이지 에디션에서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레이아웃 덕분에 다이얼 중앙은 넉넉한 캔버스가 되고, 정교하게 세공한 역동적인 말이 다이얼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습니다. 말과 그 아래 대지는 케이스와 같은 소재를 사용했는데요. 수묵화 느낌의 다이얼 배경은 케이스 소재에 따라 조금 다른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어,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 Vacheron Constantin

© fratellowatches.com
리베르소는 말을 타고 경기하는 폴로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시계입니다. 말과 인연이 깊은 시계죠. 2023년을 제외하고 2022년부터 꾸준하게 십이지 에디션을 내놓고 있는 예거 르쿨트르는 그 때문에 더욱 뜻깊은 말의 해 에디션을 내놓았습니다. 시, 분침의 타임 온리 기능의 '리베르소 트리뷰트 에나멜 호스'는 케이스 백에 블랙 그랑푀 에나멜과 인그레이빙 기법을 이용해 신비로운 구름 사이에서 나타난 말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뱀의 해와 마찬가지로 십이지의 동물과 구름의 조합은 리베르소 트리뷰트 에나멜 시리즈의 일관된 구성으로, 뚜렷한 주제로 컬렉션을 만들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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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C는 기존 모델을 이용해 십이지 에디션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포트투기저 오토매틱 42를 택했습니다. 작년에는 포르토피노 오토매틱 문페이즈였고 그 이전에는 포르투기저 크로노그래프나 포르투기저 오토매틱 40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공통적으로 크림슨 컬러의 다이얼에 골드 핸즈와 인덱스 조합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하고, 로터에 십이지의 동물을 인그레이빙해서 넣는 방식입니다. 이번 에디션도 예전과 같은 패턴의 다이얼을 택했고, 로터에는 힘차게 달리는 말을 새겨 넣었습니다. 여기에 '붉은 말의 해' 답게 크림슨 다이얼이 더욱 강조되는 느낌입니다.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트리뷰트 에나멜 시리즈처럼 IWC의 12개의 동물을 전부 모으면 꽤나 장대한 컬렉션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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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델은 '까레라 크로노그래프 다토(Dato)'의 비대칭 디자인 헤리티지를 베이스로 삼고 있습니다. 태그호이어는 '붉은 말의 해' 테마를 강조하기 위해 샴페인 골드 다이얼, 빨간색 크로노그래프 핸드와 카운터 그리고 아라비아 숫자 ‘7’대신 말을 뜻하는 간체자 ‘马’를 사용했습니다. 십이지의 일곱번째 동물이 말이기 때문이죠. 거기에다 칼리버 TH20-07가 보이는 시스루 백에는 질주하는 말을 프린트 해서 말 에디션의 디테일에 충실하면서 독특한 컬러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뱀의 해 에디션을 선보였던 브레게와 블랑팡이 이번에는 불참했지만, 그 빈자리는 예술성과 강렬한 색채로 무장한 브랜드들이 채웠습니다. 메티에다르와 잼세팅 기법으로 우아하게 말을 표현한 피아제. 강렬한 레드 다이얼로 파이어 호스(Fire Horse)를 표현한 론진과 빨간색 말을 담은 해리윈스턴도 있었습니다.
2026년 말 에디션은 단순한 시계 컬렉션을 넘어 폭발적인 확장과 열정의 에너지를 소장하는 특별한 의미를 선사합니다. 이 뜨거운 불의 기운을 담은 시계들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추진력이 되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