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시계 업계에서는 작은 사이즈를 적용하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 모델에 단순히 작은 사이즈를 추가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기존 모델의 디자인과 기능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케이스의 크기와 비례를 줄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무브먼트까지 새롭게 설계해 보다 작은 지름을 구현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40mm를 넘어서는 크기가 주류였던 남성용 스포츠 시계가 최근에는 36~40mm 정도로 내려오면서, 소형화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https://kibblewatches.co.uk
대형 쿠션 케이스, 크라운 가드, 검은 다이얼을 결합한
2000년대 중반 파네라이의 가장 상징적인 모습
스몰 사이즈의 유행은 빅 사이즈 워치가 선행되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중반, 파네라이가 크게 주목을 받으면서 시계 지름의 확대가 큰 탄력을 받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이전까지 손목시계의 지름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남성용 스포츠 워치가 40mm 내외, 드레스 워치는 35mm 내외였는데요. 동양권에서는 남성의 평균적인 손목 둘레를 고려한다면 시계 지름과 비례가 적절한 편이었지만, 그보다 체구가 큰 서양권에서는 좀 작지 않나 싶은 사이즈였습니다.
심플하면서 스타일리시한 군용시계가 시작점이었던 파네라이는 주력 모델의 지름이 44~45mm 였습니다. 오리지날을 표방하며 복각된 한정판의 사이즈는 47mm가 많았습니다.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계의 사이즈가 주는 남성성에 주목해 너도나도 큰 사이즈의 시계를 내놓게 됩니다. 손목시계가 정착한 이래, 꽤 오랜 기간동안 시계 사이즈에는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단숨에 변화가 일어난 매우 폭발력이 강한 흐름이었습니다.

https://www.threads.com/@patricepi
47mm Luminor 1950 케이스를 부활시킨 컬렉터 아이콘
케이스는 공장에서 빠르게 큰 사이즈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브먼트는 개발 기간이 길고 적용하려면 베이스 무브먼트의 파생 기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기민한 대응이 어렵습니다. 빅 사이즈 워치가 빠르게 시장에서 전개되다 보니, 케이스와 무브먼트 지름의 괴리가 발생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 급히 지름을 키워 등장한 드레스 워치를 보면 이 점이 다이얼에 나타납니다.
날짜창이 다이얼 바깥쪽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쪽에 위치하거나, 6시 방향의 스몰 세컨드가 중앙 축에 가깝게 있다거나 하는 식이었죠. 무브먼트 지름은 그대로인데(심지어 20~30년 전의 설계인 경우) 케이스 지름만 커지면서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디자인으로 이 부분을 최대한 커버하려고 했던 점이 재미있습니다. 지금보면 시계의 연식을 구분할 수 있는 특징적인 디테일이고, 그 나름의 매력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https://www.uhrenworld.com
스몰세컨드 사례

https://www.ssongwatches.com
날짜창의 사례
시계 지름이 줄어드는 이유는 몇 가지로 꼽을 수 있습니다. 빅 사이즈 워치의 반발 작용,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 및 아시아 시장에 맞춘 전략, 유행은 돌고 돈다 같은 것이죠. 그렇다고 빅 사이즈 워치가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영향력이 약화되었고 그 자리를 작은 시계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사례들을 살펴볼까요?

https://www.rolex.com
2025년, 기존의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에서 탈피해 새로운 다이내펄스(Dynapulse) 이스케이프먼트와 36,000vph의 고진동 칼리버 7135를 장착한 랜드-드웰러는 지름 36mm와 40mm로 소개되었습니다. 익스플로러I Ref. 124270(36mm)과 224270(40mm)처럼 두 가지 지름으로 나오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오이스터 퍼페츄얼처럼 남성용과 여성용을 아우르며 다양한 지름을 제시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접근입니다. 스몰 사이즈 유행을 수용하면서 기존의 지름도 유지하는 것이죠. 지름 36mm와 40mm의 다이얼 구성요소가 같지만, 각각의 지름에 어울리는 디테일의 비례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구매 예정자라면 둘의 미묘한 비례차이를 저울질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https://www.omegawatches.co.kr
1세대(2005년)가 첫 선을 보였을 때, 씨마스터 플래닛 오션은 지름 42mm와 45.5mm의 두 가지 사이즈였습니다. 빅 사이즈 워치가 태동할 시기였죠. 이후 2세대(2011년) 37.5mm 모델이 추가되면서 스몰 사이즈의 힌트를 얻는가 싶었지만, 여성용으로 기획된 제품이었습니다. 3세대(2016년)에 접어들면서 리뉴얼을 통해 39.5mm와 43.5mm로 지름을 약간 조정한 바 있습니다. 디자인이 완전히 새로워진 현행 4세대 씨마스터 플래닛 오션은 베젤의 존재감을 더욱 강조하고, 각지고 솔리드한 케이스 구조로 더욱 단단해 진 모습입니다. 지름은 42mm의 단일 사이즈이며, 무엇보다도 케이스 두께가 13.79mm로 크게 줄었습니다. 작고 슬림한 케이스가 선호되는 흐름을 따릅니다.

https://www.iwc.com
IWC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재단의 파트너십 20주년을 맞이해 내놓은 다양한 어린 왕자 에디션 중에서 스몰 사이즈에 부합하는 모델입니다. 지름 36mm 파일럿 워치는 실질적으로 단종되었으나, 어린 왕자 에디션을 통해 (일시적으로?) 부활했습니다. 에디션 고유의 블루 다이얼과 동화 어린 왕자의 삽화가 케이스백에 새겨져 있습니다. 정확성을 위해 큼직한 회중시계 무브먼트를 탑재했던 과거의 포르투기저나 파일럿 워치처럼 큰 지름에 특화된 IWC에서 나오는 스몰 사이즈 시계라 이례적인 모델입니다.

https://www.klocca.com
약 6년만에 전면적인 리뉴얼을 단행한 산토스 크로노그래프는 전작의 독특한 푸시 버튼 배치를 변경했습니다. 케이스 왼쪽에 싱글 푸셔를 두고, 크라운을 리셋 버튼으로 겸용했던 방식 대신 범용적인 푸셔 방식으로 회귀했습니다. 이것은 43.3mm의 엑스트라 라지에서 39.8mm의 라지 사이즈를 줄이면서 지름을 증가시키는 요소인, 케이스 왼쪽 싱글 푸셔를 크라운 방향으로 이동시킨 것입니다. 이로써 산토스 컬렉션에는 산토스 뒤몽에만 엑스트라 라지 모델이 남게 되었으나, 오리지날의 사이즈가 남성용 기준으로 상당히 작기 때문에 까르띠에의 스몰 사이즈 전략에서도 유지 될 모양입니다.

https://www.klocca.com
신형 로열 오크 셀프와인딩 퍼페추얼 캘린더 38mm 모델과
구형 41mm 모델
지름 38mm으로 41mm 버전에 이어 등장했습니다. 날짜, 요일, 월, 년도, 문페이즈 같은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퍼페추얼 캘린더로는 상당히 컴팩트한 사이즈입니다. 스몰 사이즈의 흐름을 반영한 모델로 41mm 모델과 기본적으로 거의 동일한 무브먼트(칼리버 7136, 41mm는 칼리버 7138)를 탑재하지만, 주(week) 표시가 삭제되었습니다. 케이스 지름에 의한 제약 때문으로 보입니다. 크라운 하나로 모든 캘린더 정보를 제어할 수 있는 올인원 크라운이 특징입니다.

https://www.hodinkee.com
강렬한 옐로우 다이얼에 블랙 타키미터 인서트와 카운터의 배색 조합은 마치 꿀벌처럼 보입니다. 기존의 블랙 베이 크로노 41보다 2mm 작은 지름 39mm 모델에 강한 색채를 부여해, 더욱 농축된 강렬함이 돋보입니다. 41mm 모델과 동일한 셀프와인딩 칼리버 MT5813을 탑재합니다. COSC인증 받은 정확성과 70시간의 파워리저브, 200m 방수로 성능면에서도 41mm와 동등합니다. 어쩌면 블랙 베이 크로노의 스몰 사이징의 신호탄이 될지도 모르는 모델입니다.
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