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네라이 라디오미르 Tre Giorni PAM01350
Ref. 3646을 향한 오마주
Brand Focus

파네라이 컬렉션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라디오미르와 루미노르. 현재는 별도의 컬렉션으로 분류되는 다이버 컬렉션인 섭머저블도 있지만, 원래는 [루미노르 섭머저블]로 불렀습니다. 작고 얇은 케이스의 루미노르 두에(Due) 역시 루미노르를 뿌리로 삼습니다. 파네라이의 양대 산맥인 라디오미르와 루미노르는 모두 파네라이가 개발한 야광염료의 이름에서 착안했습니다. 라듐(Radium)을 야광에 사용했던 시계가 라디오미르, 트리튬(Tritium)을 야광으로 썼던 시계가 루미노르입니다.

Radiomir

라듐으로 다이얼을 밝히다

라듐 도료를 입은 라디오미르 프로토타입<br/>© Panerai

라듐 도료를 입은 라디오미르 프로토타입
© Panerai

방사능 물질의 위험성을 몰랐던 20세기 초반, 파네라이는 라듐과 아연 황화물을 혼합한 야광 염료를 개발해 ‘라디오미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Radiomir’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에서 라듐을 뜻하는 ‘radio’와 ‘조준’ 또는 ‘시선’을 의미하는 ‘mir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라듐은 강력한 방사선을 내뿜어 어두운 곳에서 탁월한 발광력을 자랑했지만 매우 위험한 방사능 물질이었습니다. 라디오미르의 유일하면서도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인체에 매우 유해했다는 점이었죠. 이 사실이 알려진 후에는 방사능이 훨씬 약한 트리튬(Tritium) 성분의 루미노르로 대체되었지만, 1930~40년대 파네라이 시계에는 ‘RADIOMIR’ 타이틀을 여전히 썼습니다.

와이어 러그(Wire lug)

빈티지 시계를 포함해 현재 판매되는 상당수의 라디오미르는 요즘 시계와 다르게 생긴 러그를 달고 있습니다. 라디오미르에서 루미노르로 넘어가는 트랜지션 시기에 모던한 러그 디자인을 채택한 라디오미르 모델들도 생산되었지만, ‘라디오미르’하면 여전히 눈에 잘 띄지 않는 ‘와이어 러그’가 특징입니다.

Ref. 3646의 얇은 '와이어 러그'<br/>© Panerai

Ref. 3646의 얇은 '와이어 러그'
© Panerai

이름 그대로, 초기 라디오미르 시계는 쿠션형 케이스에 굵은 와이어를 납땜해 붙인 구조로, 가죽 스트랩을 직접 꿰어 착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라디오미르가 세상에 나온 무렵은 손목시계가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던 때였기 때문에, 와이어 러그 같은 불완전한 모양의 시계를 손목에 차야 했죠. 파네라이는 이 임시방편적인 디자인을 살려 현재에 가져왔고, 나사 몇 개만 풀면 되는, 제법 스마트한 방식으로 어렵지 않게 러그를 분리, 장착할 수 있게 디자인했습니다. 옛날처럼 러그를 케이스에 고정시켜 버리면 스트랩을 바꿀 때 꽤나 고생할 테니까요.

라디오미르의 시조새 Ref. 3646

© Panerai Magazine

© Panerai Magazine

Ref. 3646은 라디오미르 야광과 와이어 러그를 사용해 라디오미르 컬렉션의 기준을 세운 시계입니다. 지름 47mm의 케이스와 당시 기준으로 준수했던 방수 능력을 가졌던 Ref. 3646은 이탈리아 해군(Regia Marina)에 납품되어 잠수부대원들과 물속에서 활약상을 펼친 모델입니다. 그리 많은 수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Ref. 3646은 제작 시기와 특징에 따라 여러 개의 타입(Type)으로 나뉩니다. 대표적으로 ‘타입 B’는 롤렉스가 공급한 방수 케이스와 일명 샌드위치 다이얼로 불리는 이중 구조의 다이얼을 사용합니다. 구리로 된 밑 판에 라디오미르 도료를 바르고 아라비아 숫자 모양의 윤곽을 따라 잘라낸 플라스틱 핀 다이얼을 그 위에 부착합니다. 파네라이의 특징 하나인 입체적인 3D 다이얼을 보여주죠.

‘캘리포니아’ 다이얼<br/>© Phillips

‘캘리포니아’ 다이얼
© Phillips

또 다른 타입인 ‘타입 E’는 캘리포니아 다이얼입니다. 다이얼 인덱스에 로마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한 독특한 시계죠. Ref. 3646은 세부 타입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대부분 소량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해외 경매에서 매우 높은 가격에 낙찰됩니다.

라디오미르 트레 지오르니
PAM01350

라디오미르 PAM01350<br/>© Panerai

라디오미르 PAM01350
© Panerai

컬렉션의 시작에 대한 헌정은 꾸준히 있어 왔습니다. 케이스 모양이 한정적이고 디자인이 단순한 파네라이는 세부 디테일로 변화를 꾀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파네라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시계가 다 비슷해 보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라디오미르 트레 지오르니(Radiomoir Tre Giorni) PAM01350은 시조새인 Ref. 3646을 향한 오마주입니다. Ref. 3646 ‘타입 B’를 닮은 아라비아 숫자 인덱스와 특유의 핸즈 디자인을 구현했습니다.

좌: 라디오미르 Ref. 3646 ‘타입 B’ / 우: PAM01350<br/>© Sotheby's, Panerai

좌: 라디오미르 Ref. 3646 ‘타입 B’ / 우: PAM01350
© Sotheby's, Panerai

베이지 그라데이션 다이얼을 지닌 Ref. PAM01350은 Ref. PAM01335(블루 그라데이션), PAM01334(블랙 그라데이션)과 거의 동시에 출시되었습니다. 파네라이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중 Ref. PAM01350에 관심을 보일 것입니다.

© Panerai

© Panerai

베이지 그라데이션 다이얼 자체만으로도 독특하지만, 이 색감은 강력한 방사능 물질인 라디오미르에 의한 다이얼 변색을 재현한 디테일이기 때문이죠. 물론 지금은 엄격한 방사능 물질 규제에 따라 라디오미르 대신 루미노바를 야광 염료로 쓰지만, 태양광을 풀 충전했다면 (진짜) 라디오미르 못지않은 강력한 야광 성능을 맛볼 수 있습니다.

© Panerai, SJX Watches

© Panerai, SJX Watches

시간이 묻어나는 것은 다이얼 뿐만은 아닙니다. 파티나(Patina) 스틸이라고 이름 붙은 스테인레스 스틸은 표면의 광택이 오묘합니다. 유광과 무광의 경계지점에 위치해 광택을 억제한 것 같지만 유선형 케이스에는 은은한 광택감이 감돕니다. 시계를 차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상처가 케이스 표면에 더해지면 더욱 멋스럽게 보일 것 같습니다. Ref. PAM01350의 단점이라면 케이스백입니다. 라디오미르는 루미노르 컬렉션보다 방수 성능이 낮은 100m 수준이며, 솔리드 케이스백을 채택해 시각적으로 케이스를 더욱 빈틈없이 닫았습니다. 넓고 평평한 케이스백은 손목과의 밀착감을 향상시키지만, 넓은 여백을 보면 꽉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측면 뷰. 얇은 케이스백과 대비되는 미드케이스, 베젤, 그리고 크리스탈<br/>© Fratello

측면 뷰. 얇은 케이스백과 대비되는 미드케이스, 베젤, 그리고 크리스탈
© Fratello

Ref. PAM01350의 부제 ‘트레 지오르니’는 이탈리아어로 3일을 말합니다. 72시간 작동하는 칼리버 P.6000 덕분입니다. 핸드와인딩이지만 나름 긴 파워리저브 덕택에 자주 와인딩하지 않아도 되죠. 태엽을 감는 소리와 촉감이 나쁘지 않기에 틈틈이 와인딩 해 주어도 좋습니다.

‘줄질’에 최적화된 러그 설계

‘줄질’에 최적화된 러그 설계

라디오미르의 특징인 와이어 러그는 다크 브라운의 쿠오이오 토스카노(Cuoio Toscano) 스트랩이 감쌉니다. 분리가 안될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케이스백에서 보이는 4개의 나사를 풀면 러그를 쉽게 분리할 수 있습니다. 와이어 러그는 케이스 지름 45mm의 시계를 부담스럽지 않게 찰 수 있도록 합니다. 러그 길이가 무척 짧아서 러그 투 러그는 42mm 내외의 시계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죠.

© Panerai

© Panerai

파네라이의 시작을 알고 싶다면 이 시계를 통해서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크라운 가드가 달린 더욱 남성적인 루미노르가 파네라이를 대표하는 컬렉션이지만, 파네라이의 기본을 정제하고 에이징 디테일을 녹여낸 라디오미르의 매력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Radiomir Tre Giorni PAM01350

Radiomir Tre Giorni PAM01350

45mm, 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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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mir Tre Giorni PAM01334

Radiomir Tre Giorni PAM01334

45mm,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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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mir Tre Giorni PAM01335

Radiomir Tre Giorni PAM01335

45mm,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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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Writer

시계 칼럼니스트

파네라이 루미노르 LU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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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 116500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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