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경원.
이 숫자가 바로 현재 전 세계 금의 총 가치(시가총액)입니다. 엔비디아보다 6배 크고, 중국과 일본의 GDP를 합친 규모에 맞먹죠.
© ABC
배당도, 이자도, 혁신도 없고 열매조차 맺지 않는 금은, 왜 이렇게 비쌀까요?
참고로 저는 금을 비롯한 금속을 무척 좋아합니다. 한때 노무라증권의 철강금속 섹터 주니어 애널리스트로서 근무하며 고려아연과 포스코에 대한 스터디를 진심 즐겼던 '돌아이'였습니다.
시계나 자동차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금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Day-Date 40 228235
40mm, 올리브 그린/로만, 프레지던트
Day-Date 36 128238
36mm, 그린 옴브레/로만, 프레지던트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내가?) 왜 금을 좋아하는지 — 단순히 ‘안전자산’, ‘희소성’, ‘부의 상징’이라는 이유가 아닌 더 본능적으로 금을 좋아하는지 — 이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하며, 저도 몰랐던 금에 대한 ‘숨겨진 비밀’을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금을 캐내죠. 그다음엔 그걸 녹여서, 또 다른 구덩이를 파 묻고, 누군가를 고용해 지키게 합니다. 실용성은 전혀 없고요. 화성에서 지켜보는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할지도 몰라요.
- 워런 버펫
2025년 7월 7일 기준, 금 1그램 = 147,150원
© goldprice.org
잠깐,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감이 안 오시죠?
- S사 시가총액: 약 600조원
- 전세계 금 시가총액: 30,000조원(S사 50배)
- 중국 GDP: 약 26,000조 원
- 일본 GDP: 약 5,500조 원
...미쳤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 금에 저런 막대한 가치를 부여할까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아마네모페의 관의 일부인 황금 마스크© Fine Arts Musuem of San Francisco, Immerse Agency
- 고대 아즈텍: 금 = "신의 배설물"
- 잉카 문명: 금 = "태양의 땀"
- 이집트 파라오: 금 = "불멸의 살"
Daytona 126503
40mm, 블랙, 오이스터
Daytona 126518LN
40mm, 골든/브라이트 블랙, 스트랩
또한 미술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반짝임, 번쩍임, 빛남, 반짝거림, 광채... 이 모든 시각적 효과들은 고대인들에게 '신성함의 증거'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 The Walt Disney Company
팬톤 컬러연구소의 리트리스 아이즈먼(Leatrice Eiseman)은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금을 보는 순간 생존력을 느낀다는 놀라운 주장을 펼칩니다.
이유 1: 물 = 생명
금의 반짝임 → 흐르는 물 연상 → 생존 가능성 ↑
이유 2: 태양 = 성장
성장 금의 빛남 → 태양 연상 → 성장과 풍요 기대 ↑
Nautilus Travel Time Chronograph 5990/1R
40.5mm, 블루
아이즈먼의 주장을 과학적으로도 증명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벨기에의 한 연구에 따르면 목마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반짝이는 광택지에 인쇄된 사진을 보여준 결과, 두 그룹 모두 광택지를 선호했지만, 목마른 그룹이 더 강한 선호를 보였다고 합니다.
© Ferrero Rocher
또 다른 마케팅 학자들의 연구에서는 아기들이 광택이 나는 장난감이나 접시 같은 반짝이는 물건을 입에 넣는 빈도가 일반 물건보다 3배 이상 높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생후 몇 개월 된 아기들이 말이죠. 아직 '금이 비싸다'는 걸 배우지도 못한 상태에서요.
© Hankyung
우리의 뇌는 '반짝임 = 물 = 생존'이라는 공식을 수십만 년 전부터 새겨놓았다는 뜻입니다. 금을 보는 순간 우리 뇌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거죠. 이는 단순한 문화적 학습이 아닌, 생물학적 본능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기나 물은 금만큼 귀하게 여기지 않죠. 왜냐하면 금은 더욱 귀하기 때문입니다(혹은 더욱 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금은 우주에서 초신성 폭발과 중성자별 충돌로 생성되어, 수십억 년 전 지구로 떨어진 '외계 물질'입니다.
© Science News
그리고 우리는 인공적으로 금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이론적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현재 인류의 모든 기술력을 동원해도 금 원자 단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실제 금값보다 수백만 배 비쌉니다.
© CERN
이게 바로 금의 재생산 불가능한 절대적 희귀성입니다.
© NYFed
금은 '영원함'을 약속합니다. 다른 금속이나 대다수의 소재들과 달리 금은 시간이 지나도 녹슬지도, 변색되지도, 부식되지도 않습니다.
빈티지 까르띠에 탱크 루이© Analog Shift
그래서 영구히 보존될 수 있고, 위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전 세계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금은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덕분에 작은 크기로 잘라서 쉽게 휴대할 수 있는 '토큰'이나 동전(화폐)으로 만들어 필요한 재화로 교환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어 왔습니다.
© Notion Archaeological Project, University of Michigan
동네 분식집 사장님도 유로나 엔으로는 결제를 안 받으셔도, 금 한 돈이면 한 달치 김밥과 라면은 넉넉히 챙겨 주실 것 같습니다.
금본제(Gold Standard)가 폐지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불환지폐를 발행하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여전히 수천 톤의 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금이 지닌 가치에 대한 설명은 충분합니다. 금이 아직도 가장 절대적인 화폐임을 인정하는 바 아닐까요?
롤렉스 데이-데이트
©Sotheby's
우리가 금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정리해겠습니다.
- 심리적 해킹: 생존본능 자극
- 물리적 완벽함: 불변성과 희귀성
- 문화적 각인: 수천 년간 축적된 상징성
- 실용적 기능: 완벽한 교환매체
금은 그저 금속이 아니라 인류의 욕망, 본능, 문화가 만들어낸 완벽한 가치저장 시스템이지 않을까요?
Baignoire Mini W1510956
25mm x 18mm, 실버
그런데 잠깐... 만약에 말입니다.
21세기에 금과 똑같은 조건을 만족하는 새로운 '금'이 이미 등장했다면 어떨까요?
© Rolex Magazine
새로운 가치 저장소, 그 자세한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David Hwang
시계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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