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관세 폭탄 스위스 시계의 미래는?
쿼츠 파동에서 택스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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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미국 정부가 스위스산 시계에 부과한 39% 관세 소식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관세 계획'을 발표하며 차트를 들고 있는 트럼프<br/>© Demetrius Freeman/The Washington Post

'관세 계획'을 발표하며 차트를 들고 있는 트럼프
© Demetrius Freeman/The Washington Post

언론에서는 이번 관세를 업계에 부정적인 악재로만 바라보지만, 저는 오히려 이 상황이 워치메이커들에게 가파른 가격 인상을 정당화할 수 있는 영리한 '명분'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계를 사랑하는 대다수의 시계인들에게는 절대 반가운 소식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익 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계 회사들이 과연 애호가들의 마음을 마냥 헤아려 줄까요?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은 단순한 비용 전가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가치를 공고히 하는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롤렉스 신설 공장 렌더링 / © Rolex

롤렉스 신설 공장 렌더링 / © Rolex

명품 시계는 명품 패션에 비해 아직까지 스토리텔링이 가장 강력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됩니다. 하지만 명품 패션 브랜드들은 이미 스토리텔링이 소진되어, 가격 인상과 같은 더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죠. 관세 협상이 없다면 시계 브랜드들도 같은 길을 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파른 가격 인상은 오히려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지금부터 그 기회에 대한 역설적인 시각을 함께 탐구해 볼 시간입니다.

가파른 가격 상승은 이미 진행 중

트럼프의 관세 리스크는 이미 작년 말부터 예견된 바였습니다.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 등 주요 브랜드들의 올해 누적 가격 인상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 Watch Ter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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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전략은 단순히 기존 제품의 가격 인상에 그치지 않습니다. 스테디셀러 라인에 베리에이션 추가, 리미티드 에디션, 그리고 확연히 더 높은 가격대의 신제품 출시를 늘려 브랜드의 전체적인 평균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롤렉스의 신작 랜드-드웰러, 카탈로그 확장을 멈출 줄 모르는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그리고 까르띠에의 극소량으로 생산되는 모델들이 이 현상을 보여줍니다.

© Watch Ter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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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메이커들의 대응 전략: 역사가 말해주는 해답

시계 업계에게 '위기'는 낯선 일이 아닙니다. 과거 1970년대 쿼츠 파동과 오일쇼크 시절, 판매량을 늘리고 가격 접근성을 높였던 브랜드들은 가치가 하락하며 거의 전멸에 가까운 위기를 겪었습니다.

© Watch Ter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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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츠 시계의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대중적인 브랜드들은 방향을 틀어 자체적인 쿼츠 모델 라인업을 선보였습니다.

© Frat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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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시계 수집 경험이 있다면, 좋아하는 시계 브랜드 중 일부가 디지털 디스플레이 시계도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 Craft and Tailored, Patek Philippe

© Craft and Tailored, Patek Philippe

반면, 가격을 높여(동시에 가격 접근성을 낮춘) 하이엔드 전략을 고수한 브랜드들은 오늘날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와 같은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쿼츠 파동 이후 시계는 베블런재의 성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가격이 낮아질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일반적인 공식이 적용되지 않고, 오히려 가격을 높여 더욱 특별하다는 인식을 심을 수 있는 상품이 된 것입니다.

© Collectability, Patek Philippe

© Collectability, Patek Philippe

경기가 휘청이며 판매량이 주춤할 것 같을 때, 워치메이커들은 특별함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 가격 접근성을 낮추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소득 성장률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 인상을 과감히 단행함으로써,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닌 100년, 150년 이상의 역사를 지키기 위한 브랜드 가치 방어 전략을 펼쳤습니다.

자료 출처: 미국 인구조사국, Minus4Plus6, Rolex<br/>© Watch Terminal

자료 출처: 미국 인구조사국, Minus4Plus6, Ro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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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메이커들은 팬데믹 이후 유동성 랠리가 끝난 2022년부터 현재까지, 과거와 동일한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고객은 불경기를 타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중간급에서는 옥석 가리기

롤렉스와 까르띠에처럼 시장 지배력이 높은 브랜드들의 가격 접근성 악화는 그 이하급(가격이나 '프레스티지'가 아닌 시장 점유율 기준) 브랜드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 Watch Ter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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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고유의 헤리티지를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필수입니다. 이미 브랜드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이 탄탄한 브랜드는 가격으로 프리미엄 전략을 이어갈 때, 새롭게 떠오르는 브랜드들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국내 시장 영향 1
시계 가격, 환율까지 엎친 데 덮친다

국내 시계 시장은 이러한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받을까요? 신제품 가격은 해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상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 Watch Ter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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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을 수입해 국내 시장에 유통하는 업체들은 이전과 달리 글로벌 가격 인상과 높아지는 환율(원/달러, 원/스위스프랑)의 비용 증가분을 소비자 판매가에 더욱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프랑 → 대한민국 원 환율 (‘25년 8월 13일 기준) <br/>© Investing.com

스위스 프랑 → 대한민국 원 환율 (‘25년 8월 13일 기준)
© Investing.com

낮아진 가격 접근성 때문에 내수 수요가 줄어드는 영향을 쇼핑과 관광을 위해 방문한 외국인들이 상쇄시킬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마진율(판매가-매입가)을 희생할 경우 제로 마진 혹은 적자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국내 시장 영향 2
물량과 다양성 측면에서는 긍정적

반면 국내 시계 시장의 공급 측면에서는 미국의 관세가 오히려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글로벌 최대 규모 시계 시장인 Top 3(중국, 미국, 홍콩)는 모두 규제 요인으로 인해 수요가 약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이미 중국과 홍콩은 진행 중).

© Watch Ter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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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악화의 영향도 있지만, 중국에서는 정풍운동과 같은 반(反)사치품 규제가 이어지면서 지난 2년간 중국과 홍콩의 스위스 시계 수입액이 큰 폭으로 감소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 시장은 이러한 변화의 반사효과로 수혜를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의 새로운 패션 허브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은 이제 단순한 내수 시장을 넘어 외국인 수요까지 커버하는 시장이 되고 있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제이콥앤코, 롤렉스, H. Moser & Cie., 태그호이어 등 럭셔리 워치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서울에 새로운 부티크를 오픈하는 이유는 바로 이 시장 잠재력 때문입니다.

결론: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미 수백 번 들으셨겠지만, 시계는 오늘이 가장 저렴합니다. 하지만 가격이 점점 높아져도 여전히 활발히 거래되는 시계들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시장의 독특한 위치를 이해하고 글로벌 가격 동향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면, 2025년은 현명한 컬렉터에게 매우 결정적인 한 해가 될 것입니다.

David Hwang

시계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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