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데이트는 롤렉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는 모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아주 좋아하는 시계라 조금 편향된 의견일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주관적인 견해를 넘어 데이-데이트가 지닌 유형적·무형적 가치를 폭넓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왜 이 시계가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하는지, 그리고 그 배경에 숨겨진 이유들이 얼마나 데이-데이트의 진정한 가치를 놓치고 있는지 함께 논의해 보겠습니다.

데이-데이트 40 / © Rolex

© Rolex
다른 롤렉스 아이콘들과 달리, 데이-데이트는 처음부터 프리미엄 라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56년 출시 당시부터 데이-데이트는 롤렉스 라인업 내에서 가장 고가의 컬렉션이었습니다. 서브마리너, 익스플로러, 데이토나가 모두 스테인리스 스틸 모델로 시작한 반면에, 데이-데이트는 한 번도 스테인리스 스틸 버전으로 출시된 적이 없습니다.
이 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롤렉스는 데이-데이트를 럭셔리 세그먼트의 상징으로 포지셔닝했습니다.
데이-데이트는 높은 가격대로 인해 성공한 이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시계였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이룬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었기에, 단순한 시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데이-데이트는 자연스럽게 성공과 권위의 상징으로서의 무형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데이-데이트를 구매하려면 평균 6~9개월치 월급이 필요했습니다. 반면, 스틸 소재 롤렉스는 1~2개월치 월급으로 구매할 수 있었죠.
같은 시기 18k 골드 소재의 파텍필립 칼라트라바(Ref. 2526)는 브레이슬릿 모델의 가격이 1,200달러에 달했는데, 이를 감안하면 1957년 데이-데이트 가격인 935달러가 얼마나 고가였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 Patek Philippe
대통령, CEO, 정치인, 산업 리더들이 데이-데이트를 착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성취의 상징이었습니다.

© Analog:Shift
스톤 다이얼, 우드 다이얼, 메테오라이트 다이얼... 이 모든 실험적 다이얼은 데이-데이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롤렉스가 단순한 공구 시계 제조사에서 고급 시계 장인으로 진화한 것은 데이-데이트 덕분입니다.

© Amsterdam Vintage Watches
트리바크(tree bark) 베젤, 플로렌타인 마감, 독특한 브레이슬릿 패턴들 — 이런 장인적 디테일은 브랜드 카탈로그에서 데이-데이트에서 독점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일부 데이저스트에도 적용되었지만).
이것은 롤렉스가 제조업체에서 예술가로 변모한 증거입니다.


그린 어벤츄린, 카닐리안 다이얼 / © Rolex
롤렉스는 현재에도 컬러풀한 스톤 다이얼을 데이-데이트를 꾸준히 출시하고 있습니다.

터콰이즈 다이얼 / © Rolex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금은 단순한 귀금속을 넘어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가장 신뢰받는 자산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중앙은행들은 금 보유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으며, 개인 투자자들 역시 포트폴리오의 안전장치로 금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36mm 사이즈 데이-데이트를 구매하면, 사실상 70그램(19돈)의 순금을 소유하는 셈입니다.

70그램의 순금은 현재 시장에서 약 $10,000(약 ₩14,000,000)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고 시장에서 빈티지 데이-데이트의 평균 가격이 ₩18,000,000~₩22,000,000임을 감안하면, 구매가의 60%에서 75% 정도가 순금 자체의 가치에 해당합니다.


'The Sopranos' 드라마의 마피아 보스 토니 소프라노 / © HBO

© Getty
구글 이미지에 'drug dealer Rolex'(마약 딜러의 롤렉스)를 검색하면 대부분 금통 롤렉스의 사진이 뜹니다. 솔직히 말하면, 풀골드 시계는 눈에 띕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풀골드 시계가 그런 이미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옐로우 골드 브레이슬릿은 "나 돈 많아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금통 롤렉스(특히 데이-데이트)는 마피아나 마약 딜러의 시계로 연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문화에서는 특히 절제와 겸손이 미덕으로 여겨지기에, 이런 화려함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 20th Century Studios, The Walt Disney Company
1950년대에는 정장이 일상복이었습니다. 심지어 장을 보러 갈 때도 정장을 입었죠. 이후 의류에 플라스틱 소재가 들어오고, 노동 작업에 맞는 전문적인 작업복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던 것이 점차 패션으로 자리 잡았고, 이제 2025년에는 후드티와 스니커즈 차림으로 회의에 참석합니다.

© Showtime Networks, Paramount Global
우리의 드레스 코드가 캐주얼해지면서, 서브마리너나 GMT-마스터 II 같은 스포츠 모델이 더 어울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데이-데이트는 항상 롤렉스 중 가장 비쌌습니다. 출시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무나 쉽게 구매할 수 없는 시계라는 점은 변함없습니다. 그런 만큼 판매량과 거래량, 그리고 인기도 면에서는 롤렉스의 다른 주요 모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굳이 비싼 금을 살 필요가 있나요? 스틸도 품질은 똑같잖아요." 기능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테인리스 스틸을 선택합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는 내구성과 기능성 면에서 금 시계와 큰 차이가 없으며,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대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선택받고 있습니다.


© Time + Tide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골드 시계는 가을에 특히 잘 어울립니다. 갈색 재킷, 베이지 스웨터, 따뜻한 색조의 가을 팔레트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 Hodinkee
이것이 게임 체인저입니다. 골드 브레이슬릿을 고급 가죽 스트랩(브라운 또는 블랙)으로 교체하는 순간, 화려한 골드 시계가 절제되고 품격 있는 골드 드레스 워치로 변신합니다. 과시가 아닌 세련됨이 됩니다.

옐로우 골드가 부담스럽다면? 화이트 골드가 있습니다. 화이트 골드 데이-데이트는 겉보기에 스틸처럼 보이지만, 무게와 광택에서 프리미엄함을 드러냅니다. 빛반사가 쨍하지 않고 은은하죠. 아는 사람만 아는 절제된 럭셔리입니다.
내재된 금의 가치, 롤렉스라는 브랜드에 성공의 상징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데이데이트는 손으로 만져보고, 무게를 느껴보고, 루페로 다이얼의 디테일을 살펴보고, 손목 위에 (감히) 올려보면 글로는 담을 수 없는 감탄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유형적 가치 위에 역사, 장인정신, 성공의 상징 등의 무형적 가치까지 담고 있는 데이데이트, 꼭 한번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David Hwang
시계 애널리스트
Watch Term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