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T 마스터가 세상에 나온 1950년대, 한 해 동안 해외여행을 떠난 미국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한 비율입니다.
당시 가장 저렴한 투어리스트 클래스였던 뉴욕–런던 왕복 항공권도 약 486달러로, 미국 가구 연소득 중앙값(약 4,400달러)의 10%를 넘었습니다.
해외여행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던 셈입니다.

팬암 국제선 기내 서비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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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0.6%의 여행자들, 그리고 그들의 안전한 비행을 책임지던 파일럿들에게는 출발지(예: 뉴욕)와 도착지(예: 런던)의 시간을 동시에 파악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롤렉스 GMT 마스터는 바로 이들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팬암 뉴욕–모스크바 첫 논스톱 비행을 소개한 롤렉스 GMT 마스터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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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을 구분하기 위해 롤렉스가 고안한 블루-레드 '펩시' 베젤은 이후 GMT 시계 디자인의 상징이자 기준이 되었고, GMT 마스터를 아이콘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탄생 70여 년이 지난 지금, GMT 마스터는 중고 시계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대장주'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GMT 마스터 구매를 고민하고 계신 분, 혹은 이미 소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이 글과 함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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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 GMT 마스터 광고 "Pan Am flies with Ro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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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아메리칸 월드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 이하 '팬 암')은 당시 세계 최대의 국제선 항공사였습니다. 여러 시간대를 넘나드는 장거리 노선이 늘어나자, 팬 암은 파일럿들이 출발지와 도착지의 시간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시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롤렉스에 그 제작을 요청했습니다.
팬 암의 요구에 맞춰 롤렉스는 12시간에 한 바퀴를 도는 일반 시침과 24시간에 한 바퀴를 도는 별도의 GMT 핸즈가 연동되어 움직이는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개발하고, 여기에 낮과 밤을 구분해 표기하는 24시간 눈금 베젤을 더했습니다.

최초의 GMT 마스터(Ref. 6542)에 사용된 베이클라이트 베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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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렉스는 이 두 가지 새로운 요소를, 앞서 회전 베젤을 선보인 오이스터 퍼페츄얼 모델(Ref. 6202 턴-오-그래프, Ref. 6204 서브마리너)의 설계에 접목해 최초의 GMT 마스터, Ref. 6542를 완성했습니다.

롤렉스 턴-오-그래프 Ref. 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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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마리너 Ref. 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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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T 마스터 Ref. 6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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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출장 중, 서울은 지금 몇 시인지 궁금해졌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스마트폰으로도 금세 확인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손목 위의 GMT 마스터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Ref.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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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T는 'Greenwich Mean Time(그리니치 평균시)'의 약자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 자오선(경도 0°)의 평균 태양시를 뜻합니다. 세계 각 지역의 표준시는 이 기준(오늘날에는 원자시계 기반의 협정 세계시, UTC)과의 시차로 표기하며, 기준선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마이너스(-), 동쪽으로 갈수록 플러스(+)가 됩니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5,600km 떨어진 뉴욕은 GMT-4(서머타임 기준), 동쪽으로 약 8,900km 떨어진 서울은 GMT+9입니다. 즉, 서울은 뉴욕보다 13시간 앞서 있습니다(서머타임이 해제되는 겨울철에는 14시간).
먼저 크라운을 풀어 끝까지 당긴 뒤, 시침과 분침, GMT 핸즈가 모두 12시 방향을 가리키도록 맞춥니다.

다음으로 현지 시간을 맞춥니다. 지금 뉴욕이 오전 9시라고 가정하면, 12시 위치에서 출발한 시침을 270도 돌려 9시를 가리키도록 합니다.

이때 GMT 핸즈도 함께 움직이지만, 속도가 시침의 절반이어서 정확히 135도만 이동합니다. 일반 시침은 12시간 눈금의 다이얼을 기준으로 하루에 두 바퀴를 도는 반면, GMT 핸즈는 24시간 눈금의 베젤을 기준으로 하루에 한 바퀴를 돌기 때문입니다.
이제 베젤을 돌릴 차례입니다. 베젤의 삼각형 표시를 다이얼의 12시 위치에 맞춘 뒤, 서울이 13시간 앞서 있으므로 베젤을 반시계 방향으로 13시간 눈금만큼 돌립니다. 그러면 삼각형 표시는 다이얼의 5시와 6시 사이에 놓이고, GMT 핸즈는 베젤의 '22'를 가리킵니다. 서울은 지금 밤 10시라는 뜻입니다.

이것으로 세팅이 끝났습니다. 이제 시침과 분침은 뉴욕 현지 시간(오전 9시)을, GMT 핸즈와 24시간 베젤은 서울 시간(밤 10시)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TIP. GMT 마스터 II(1982년 출시된 Ref. 16760부터)는 크라운을 풀어 첫 번째 단계까지만 당기면 시침만 1시간 단위로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분침과 GMT 핸즈(홈 타임)는 그대로 유지되고, 날짜는 시침에 맞춰 함께 바뀝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시침만 현지 시간에 맞추면 되므로, 시계를 멈출 필요도 홈 타임을 다시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오리지널 GMT 마스터와 GMT 마스터 II를 가르는 핵심 기능입니다.

펩시 세라크롬 베젤 인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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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T 마스터를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든 디자인 요소는 단연 회전 베젤입니다. 24시간 눈금을 레드(낮)와 블루(밤)로 나눈 이 투톤 베젤은 그 자체로 GMT 마스터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숫자를 화이트로 표기해 완성한 레드·화이트·블루 조합은 성조기를 연상시키는데, 당시 GMT 마스터의 주력 시장이던 미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레드·화이트·블루 조합의 GMT 마스터 II Ref. 126710BL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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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T 마스터 이후 세이코, 모바도 등 여러 브랜드가 블루-레드 베젤을 채택한 것도 이 색 조합이 지닌 상징성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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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도 시리즈 800 펩시 베젤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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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롤렉스는 2026년 4월 워치스 앤 원더스 개막일에 맞춰 스틸(Ref. 126710BLRO)과 화이트 골드(Ref. 126719BLRO) 펩시 모델을 모두 카탈로그에서 제외하며 단종했습니다. 롤렉스가 공식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 가운데, 블루-레드 투톤 세라크롬 베젤의 높은 생산 난이도부터 새로운 컬러웨이를 위한 세대교체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롤렉스 매장에서 새 펩시 GMT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펩시 베젤의 단종은 중고 시장에도 곧바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부에서는 데이터로 본 GMT 마스터의 시장 위상, 그리고 Ref. 6542부터 126710까지 레퍼런스별 특징과 2026년 경매 시세를 살펴봅니다.
(2부에서 계속)
David Hwang
시계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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