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계 시장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세계 최대 시계 시장인 미국이 스위스산 수입품에 39% 관세를 부과하며 시장 전반에 긴장감이 흘렀고, 무역 갈등과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겹치며 소비 심리는 위축됐죠. 그만큼 소비자들의 평가도 더욱 냉정해졌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선택받은 시계들은 분명 남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선택받은 브랜드와 그렇지 못한 브랜드, 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시계가 잘 팔렸는지를 논하기 전에, 이런 상황에서도 시계를 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답은 명확합니다. 불경기 속에서도 시계를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췄으면서도, 무엇보다 시계를 좋아하고 잘 아는 '컬렉터'들이죠.

© Courtesy of Phillips
통상 ‘컬렉터’라고 하면 다수의 시계(혹은 미술, 와인 등)를 수집하는 사람이 연상되지만(그리고 그런 경우도 많지만), 실제로는 수량보다 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 평소 시계와 관련된 콘텐츠 소비를 많이 한다
·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계의 완성도와 기술력을 평가할 줄 안다
·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요소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
아우렐 박스, 니콜라스 포크스 등
경매인들과 전문가들의 라운드 테이블

노틸러스 5711 / © Watch Club
경기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관세 때문에 리테일 가격이 높아지는 상황. 이런 와중에도 사람들이 변함없이 찾는 시계가 있습니다.
수십 년간 꾸준히 리셀 시장 시세(중고 시세)가 상승해온 덕분에 환금성까지 갖췄고, 시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브랜드’ 하면 그 정체성을 단번에 이해하는 워치메이커. 바로 파텍 필립과 롤렉스입니다.

자료 출처: EveryWatch
롤렉스는 3분기 글로벌 2차 시장 거래의 31.4% 점유율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신제품 시장의 점유율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또한 3분기 거래 건수와 중간 가격(중간값)은 전 분기 대비 각각 17.4%, 2.6% 상승하며 시장 평균(7%, 2.6%)을 상회했습니다.

데이토나 '르망' 126529LN, 126528LN
© Hodinkee

Daytona 126500LN
40mm, 화이트, 오이스터


Daytona 126500LN
40mm, 블랙, 오이스터

거래 금액과 가격 상승 부분에서 롤렉스 거래금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모델은 데이토나였습니다. 특히 구형 스틸 데이토나인 ‘세라토나’ ref. 116500LN은 데이토나 내에서도 가장 높은 거래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다만 가파른 금 가격 상승에 따른 데이-데이트 40 가격 상승도 인상깊었고 현행 ref. 228235/228238 레퍼런스의 거래비중이 가장 높았습니다.

데이-데이트 40 228238 / © Watch Club

Day-Date 40 228235
40mm, 올리브 그린/로만, 프레지던트


Day-Date 40 228238
40mm, 샴페인/다이아몬드, 프레지던트

다음은 명불허전 파텍 필립입니다. 파텍 필립은 3분기 글로벌 2차 시장에서 16.2% 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신품 시장의 5~6% 점유율을 크게 웃도는 수치입니다. 같은 기간 거래 건수와 리셀 거래 시세는 전 분기 대비 각각 20.6%, 4.1% 증가했습니다.

자료 출처: WatchCharts
특히 아쿠아넛과 노틸러스의 대표 모델인 5167A와 5711/1A는 3분기 중 시세가 각각 12.5%, 5.1% 상승하였고, 국내는 물론, 미국과 홍콩 등 주요 시장에서도 품귀 현상을 보였습니다. 12월 현재도 노틸러스와 아쿠아넛은 여전히 강세를 이어가며 시세는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Aquanaut 5167A
40.8mm, 블랙


Nautilus 5711/1A-010
40mm, 블루


자료 출처: WatchCharts
팬데믹 버블이 꺼진 지도 벌써 3년 반, 하지만 롤렉스의 ‘리셀 프리미엄’은 여전히 약 17%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기가 유독 높은 데이토나와 GMT-마스터는 리테일가 대비 각각 100%, 80%의 높은 중고 시세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오버시즈 퍼페추얼 캘린더 4300V
© SWISSWATCHES MEDIA GMBH
한편, 또 다른 흐름도 눈에 띕니다. 롤렉스나 파텍 필립보다 인지도나 환금성 등 ‘안전자산’ 측면에서는 부족하여 비교적 프리미엄이 낮은 브랜드도 승부를 본 한 해였습니다. 무브먼트 기술력이나 피니싱, 스토리나 희소성 등 요소로는 견줄법한 브랜드부터, 압도적인 희소성까지 갖춘 브랜드의 거래금액 성장률이 돋보였습니다. 즉 환금성과 프리미엄으로만 판단하는 가치가 아닌 진정성 있는 내재가치가 돋보인 시계들을 컬렉터들이 선호했다는 뜻입니다.

222 / © Hodinkee
대표적인 예가 바쉐론 콘스탄틴(이하 '바쉐론')입니다. 팬데믹 기간에는 인기나 인지도 면에서 ‘홀리 트리니티'에서 3등이지만, 올해 3분기 바쉐론의 거래 건수는 전 분기 대비 24.5% 증가하며 오데마 피게(19.4%)를 넘어섰습니다. 특히 거래금액 성장률은 28%를 기록하며 오데마 피게(5.9%) 대비 5배에 가까운 성장 속도를 보였습니다.

41개의 컴플리케이션을 갖춘 솔라리아 울트라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 Revolution Watch
바쉐론의 역사나 스토리, 기술력 등 '홀리 트리니티'의 파텍 필립과 오데마 피게에 비하여 뒤처진다고 볼 수 없습니다(오히려 능가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오직 브랜드 인지도에서만 뒤쳐져서 발생하는 ‘격차’로 인해 책정되는 가격. 평균 거래 시세 $18,911로 오데마 피게($43,283)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 메리트가 강하게 어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비고: 2025년 3분기 평균 원·달러 환율 1,385원 적용
자료 출처: EveryWatch
같은 맥락에서 IWC, 예거르쿨트르, 쇼파드, 그랜드 세이코의 3분기 거래금액 성장률(각각 42.3%, 29.7%, 62.7%, 63.2%)도 주목할 만합니다. ‘가치 진정성’에 대한 시장의 니즈(동시에 '하이프'에 대한 피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Chronomètre à Résonance / © A Collected Man
가치 진정성의 연장선상에서, 독립 워치메이커들의 약진도 인상적입니다. 공급 물량 자체가 적어 백화점에서는 만나기 어렵지만, 경매 시장에서는 높은 인기를 누리며 지난 몇 년간 컬렉터들을 사로잡아온 브랜드들의 활약도 눈부셨습니다.

MB&F Legacy Machine 101 EVO
Greubel Forsey Double Balancier Convexe
© MB&F, Greubel Forsey
조사된 총 60개 브랜드의 3분기 평균 시세 상승률이 2.6%에 그친 반면, 대표적인 독립 워치메이커들은 그야말로 화려한 한 분기를 보냈습니다. F.P. Journe은 9.0%, MB&F는 12.9%, Greubel Forsey는 10.4%를 기록하며, 숙련된 컬렉터는 물론 대중 시계 커뮤니티의 이목도 집중시켰습니다.

© Courtesy of Phillips
12월 초에는 《대부》 시리즈의 전설적인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의뢰한 유니크 F.P. Journe 시계가 1,075만 5,000달러(약 158억 5,000만 원)에 낙찰되며, 경매에서 판매된 F.P. Journe 시계 중 가장 높은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 Courtesy of Phillips
여러분은 3분기에 어떤 시계를 구매하셨나요?
연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소중한 누군가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시계를 선물한다면 어떤 시계를 마음에 두고 계신가요?
David Hwang
시계 애널리스트
Watch Term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