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워치메이커 파텍 필립
파텍 필립은 어떻게 최고가 되었는가
Brand Focus

“파텍 필립은 소유하는 것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해 맡아두고 있을 뿐입니다.”
(You never actually own a Patek Phillipe. You merely look after it for the next generation.) 

’Generations’ 광고 캠페인 / ⓒ Patek Philippe

’Generations’ 광고 캠페인 / ⓒ Patek Philippe

세계 최고의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이 1996년부터 시행한 ‘대대로(Generations)’ 광고 캠페인의 가장 유명한 슬로건입니다. 파텍 필립의 시계는 시간만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닌, 대대손손 ‘가치’를 물려줄 수 있는 ‘가보’라는 것. 시계 하나하나가 예술작품과 동일한 평면 위에 있기에 ‘세월이 지날수록 가치가 빛을 본다’라는 의미도 내포합니다. 최고의 타임피스를 제작하기 위한 헌신에서 시작된 파텍 필립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파텍 필립의 탄생

파텍 필립은 회사 설립 목적부터가 워치메이킹의 정점을 찍기 위함이었습니다. 최고가 되기 위한 야망은 창립자 앙투안느 드 파텍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왼쪽부터 파텍, 필립 / © LUCERNE

왼쪽부터 파텍, 필립 / © LUCERNE

폴란드 망명 귀족 출신인 파텍은 스위스 제네바로 이주하고 시계에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파텍은 폴란드의 다른 시계 장인 차펙(Czapek)을 만나 1939년, 파트너들과 Patek, Czapek & Cie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차펙이 회사를 떠난 후,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했던 파텍은 워치메이커 장 아드리안 필립과 손을 잡게 됩니다. 필립은 당시 새로운 기술이었던 와인딩 키가 필요 없는 시계를 제작하여 상까지 받은 인재였죠.

의기투합한 두 야망가는 각자의 장점을 살렸습니다. 파텍은 상류층을 매료시킬 화려한 럭셔리에 대한 지식을 겸비했고 필립은 시계학을 집착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경영가와 기술자의 만남으로 기술력이 접목된 최고급 시계들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1851년, 회사명을 Patek, Phillipe & Cie로 바뀌게 되어요. 같은 해에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시계를 선물하며 브랜드를 널리 알리게 됩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파텍 필립 회중 시계  / © Fortune

빅토리아 여왕의 파텍 필립 회중 시계 / © Fortune

왕좌의 자리는 원칙에서부터

브랜드의 정체성은 파텍과 필립이 세상을 떠나고 오히려 더 확고해졌습니다. 비즈니스맨인 파텍이 사망한 후 브랜드의 모든 에너지를 워치메이킹에 쏟아부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손목시계용 퍼페츄얼 캘린더 기능을 무려 100년 전에 개발하고 26개의 기능을 탑재한 ‘슈퍼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등, 파텍 필립 브랜드는 지속해서 시계학의 패러다임을 새로 세웠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수익보다 자기만족을 우선시하는 독자적인 비전이 상업적 성공의 비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비전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1925 No. 97975 퍼페츄얼 캘린더 / ⓒ Revolution

1925 No. 97975 퍼페츄얼 캘린더 / ⓒ Revolution

스턴 가문, 오늘의 파텍을 만들다

1929년, 미국 대공황의 여파를 파텍 필립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1932년, 파텍 필립의 철학을 존경해왔던 스턴 형제는 위기의 파텍 필립을 인수하고 브랜드의 가치를 지켜가기로 했습니다. 이로부터 현재까지 파텍 필립은 가족기업이자 독립 기업으로 4대째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티에리와 필립 스턴 / © Spear’s

티에리와 필립 스턴 / © Spear’s

스턴 가문은 전통적 시계 제작을 고수하지만, 결코 보수적이지 않습니다. 3대 스턴 가문 출신 CEO 필립 스턴은 쿼츠 파동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시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와 함께 1976년 럭셔리 스포츠 시계 노틸러스를 출시하고, 4대 CEO 티에리 스턴은 젊은 소비자를 위해 1997년 아쿠아넛을 출시하는 등 시계 시장의 수요도 완벽하게 파악했습니다.

노틸러스 5811/1G  / ⓒ Patek Philippe

노틸러스 5811/1G / ⓒ Patek Philippe

아쿠아넛 5167R / ⓒ Patek Philippe

아쿠아넛 5167R / ⓒ Patek Philippe

Nautilus 5711/1A-011

Nautilus 5711/1A-011

40mm, 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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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utilus 5711/1R-001

Nautilus 5711/1R-001

40mm,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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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utilus 5711/1A-010

Nautilus 5711/1A-010

40mm,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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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품질만을 고수하다

파텍 필립은 모든 시계를 공예품처럼 취급합니다. 독단적인 길을 걷는 브랜드답게 시계도 독단적인 작품이 되는 셈입니다. 모든 시계는 자체 인증 자사가 직접 부여하는 ‘파텍 필립 실’이 각인됩니다. 발로 뛰는 현 CEO 티에리 스턴은 모든 미닛 리피터의 차임 소리를 직접 최종 검수하고 클라이언트 관리에도 관여합니다. 실제로 미닛 리피터 구매 희망자는 스턴의 개인적인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엄격한 스크리닝 프로세스가 적용됩니다.

Patek Phillipe Seal  / ⓒ Patek Philippe

Patek Phillipe Seal / ⓒ Patek Philippe

1시간, 15분, 1분 마다 소리로 시각을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 ⓒ Patek Philippe

1시간, 15분, 1분 마다 소리로 시각을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 / ⓒ Patek Philippe

파텍 필립은 연간 6만 5천 개에서 7만 개의 시계만 생산한다고 합니다 (2018년 공식 생산량은 6만 2천 개). 연간 100만 개가량의 시계를 생산한다고 알려진 롤렉스와 비교하면 겨우 20분의 1 수준입니다. 이렇게 수량이 적은 이유는 시계 조립의 전 공정을 인하우스에서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하기 때문인데요. 시중에 판매되는 신규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제작하고 완성하는데 4~8년의 기간이 걸려 생산량이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한 퀄리티를 위해 경제적 손실도 감수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기계식 시계 업계에 큰 타격을 준 2021년, 품질관리용 신축 공장을 개설해 시계 완성도를 향한 집념이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가치’를 강조하는 가족 중심적 서사는 이 모든 프로세스를 총괄한 스턴 가문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과 내일의 파텍 필립

“우리는 워치메이커지, 리테일러가 아니에요.” - 티에리 스턴

대중에게는 노틸러스와 아쿠아넛이 익숙하지만, 브랜드의 자부심은 컴플리케이션 시계에 담겨있습니다. 수백 명의 기술자가 투입되어 극소량으로 제작되는 그랜드 컴플리케이션들은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 제작된 레퍼런스는 자사가 직접 옥션하우스로 보내기도 하죠.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낙찰된 시계 10개 중 9개가 파텍 필립입니다.

파텍 필립의 DNA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브랜드의 베스트셀러 노틸러스 5711은 인기 절정일 때 단종시킬 만큼 파텍 필립은 헤리티지와 정체성 보존을 위한 집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 파텍 필립이 1999년 이후로 처음으로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일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신규 출시작도 ‘최고’를 상징할 오브제가 될 것인지 기대가 됩니다.

Young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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