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롤렉스의 쇠퇴’라는 다소 자극적인 주제의 콘텐츠들이 다양한 유튜브 및 SNS 채널을 통해 확산되고 있습니다. 시계를 동시에 실물자산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애호가라면 이러한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할 여지도 있어 보이겠지만...
아닙니다. 롤렉스는 결코 그렇게 쉽게 무너질 브랜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단순한 사치품이 아닌 새로운 안전자산의 지위를 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롤렉스의 리셀 시장 가격 변화
© WatchCharts, Watch Terminal
설명: 2009년 1월을 기준으로 현재까지의 시세 변동률 %를 보이는 차트이며 총 30개의 거래량 상위 데이트저스트, 서브마리너, GMT마스터, 데이토나 레퍼런스의 시세를 활용하였음
표는 지난 번 발행된 '30경원의 비밀 Why Gold?'에 대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단, '금'이 들어가는 자리에 '롤렉스'를 넣었을 뿐인데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보입니다.
우선 '안전자산'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무슨 뜻일까요? 가격의 변동성이 없어야 안전자산일까요?
서브마리너 Ref. 1680 / © Bonhams
시간 앞에서 거의 모든 자산은 가치가 떨어집니다. 썩는 음식, 낡아지는 가죽 가방, 고장이 많아지는 자동차, 그리고 계좌 속 현금까지 —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 '변질'되는 자산입니다.
하지만 물리적 환경이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쉽게 변질되지 않는 자산이 바로 금, 일부 가상화폐, 그리고 롤렉스 시계입니다.
오만 왕국의 왕실의 문양이 새겨진 칸자르(Khanjar) 롤렉스© Phillips
하지만 콘크리트 덩어리가 변질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안전자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자면, ‘변질’이란 단순히 썩거나 부서지는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가치나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금은 색과 빛의 반사로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며(물과 태양을 연상시켜) 우리의 뇌를 ‘최면’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금을 발견한 지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금에 매혹되는 것이죠.
롤렉스(혹은 거의 모든 고급 시계들) 역시 반짝이는 모습에서 ‘삶이 잘 풀리고 있구나’ 하는 심리적 안정감을 줍니다. 금처럼 롤렉스 역시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데이토나 Ref. 6263 / © Bonhams
좋은 실물·안전자산은 어느정도 귀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공급량이 쉽게 풀리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아도 애플워치처럼 언제나 매장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안전자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변색과 변질에 강하며 희소성까지 갖춘 빈티지 스테인리스 스틸 데이토나가 화려한 골드 소재의 시계들보다 비싸게 입찰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참고로 빈티지 데이토나 중 인기 많은 Ref. 6263의 생산량은 18,000개 정도로 추정됩니다.
금은 외계 물질인 만큼 공급에 한계가 있으며, 새로운 ‘골드러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한정된 수량만 민트(Mint)되었고, 채굴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과 닮았습니다.
© Andrey Rudakov/Bloomberg
롤렉스는 이론적으로는 무한히 생산할 수 있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롤렉스에게는 '이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브랜드 가치이기 때문이죠!
티타늄으로 제작된 요트-마스터 40 Ref. 226627© Teddy Baldassarre
Yacht-Master 42 226627
42mm, 인텐스 블랙, 오이스터
롤렉스는 지금과 같은 불경기 속에서도 평균 20~30%대의 리셀 프리미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가격 인상 속도를 높이고, 구매자에 대한 심사 절차까지 도입함으로써 자사 제품의 희소성을 전략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라토나' Ref. 126500LN / © Fratello
Daytona 126500LN
40mm, 화이트, 오이스터
Daytona 126500LN
40mm, 블랙, 오이스터
사람들이 미친 듯이 좋아하는 데다 귀하기까지 하다면? 가격은 장기적으로 우상향을 그리고, 그 흐름에 올라타고자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며 결국 활발한 거래, 즉 높은 유동성까지 생깁니다. 안전하기 때문에 거래량이 많고, 언제나 다른 재화나 화폐로 교환이 가능하니 더욱 안전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죠.
© Minus4Plus6, Rolex, Watch Terminal
설명: 사이즈 36mm,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플루티드 베젤과 쥬빌리 브레이슬릿 조합을 기준으로 조사(대상 레퍼런스 번호는 1601, 16014, 16234, 116234, 126234)
국내 업체들의 실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주요 제품들의 경우 적게는 3일, 많게는 18일이 걸리며(평균 9일), 글로벌 시장에서는 약 14~20일 정도로 측정되었습니다. 국내 시장이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더 높은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레이디-데이트저스트 28 Ref. 279173© Rolex
바이버에서 레이디-데이트저스트 28 모델의 거래는 평균 4일 만에 성사됩니다. 예물 시계로 인기가 높은 이 모델은 현재 250개가 넘는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존재하지만, 리테일 매장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많은 구매자가 원하는 모델을 찾기 위해 리셀 시장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Lady-Datejust 28 279173
28mm, 실버/다이아몬드, 쥬빌리
Lady-Datejust 28 279171
28mm, 초콜렛/다이아몬드, 쥬빌리
한편으로는 거래가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인지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1. 롤렉스는 금이나 비트코인처럼 ‘쪼개서’ 거래할 수 없습니다. 즉, 롤렉스 0.1개만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2. 롤렉스의 평균 시세는 약 2,700만 원으로, 한국 기준 평균 월 소득의 4~5배에 달하며, 미국 기준으로도 2배가 넘는 금액입니다. '쉽게' 구매하기가 어려운 금액대라는 뜻입니다.
3. 사치품이라는 부분 외 별다른 사용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게는 3일 내 거래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유동성 아닐까요?
GMT-마스터 II / © Wrist Aficionado
© WatchCharts, Watch Terminal
설명: 은 가격을 논의할 때 금-은 가격 비율을 자주 언급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금의 가격과 주요 롤렉스 모델의 시세의 비율을 직접 산출해 보았습니다. 결론!: 대표 안전자산인 금에 비하여 제2의 안전자산인 롤렉스의 가격은 '롤렉스가 귀해졌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2013년 수준으로 회귀했습니다.
GMT-Master 2 126710BLRO
40mm, 블랙, 쥬빌리
GMT-Master 2 126710BLNR
40mm, 블랙, 쥬빌리
GMT-Master 2 126710GRNR
40mm, 블랙, 쥬빌리
이를 일찍 깨닫고 발빠르게 움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빠른 시세 차익을 위해 되팔기(flipping)를 하는 사람들, 투자 포트폴리오에 귀한 롤렉스를 담아두는 자산가들, 그리고 미래 자손들을 위해 환금성이 보장되는 실물자산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요.
제가 드린 말씀에 모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롤렉스의 가치는 현재 계좌에 있는 현금보다 장기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지닐 가능성이 큽니다.
David Hwang
시계 애널리스트
Watch Terminal